1960, 70년대 영화들은 국내 개봉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직역하거나 영어 제목을 우리 말로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전에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석양의 무법자' 등 분위기에 맞는 의역이 돋보였다.
'작은 사랑의 멜로디'(Melody, 1971년)도 마찬가지다.
여주인공 이름을 딴 원제와 달리 국내 개봉 제목은 영화의 분위기가 함축적으로 잘 살아있다.
당시 대부분 27세의 젊은이들이 만든 이 영화는 흔히 영국판 '소나기'에 묘사된다.
열 살짜리 소년 소녀들이 사랑에 눈을 떠 결혼하는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황순원의 소설과 달리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된다.
두 아이의 사랑은 풋풋하며 순수하고 그들이 벌이는 소동은 때론 사뭇 즐겁기까지 하다.
특히 이 작품은 60년대 말, 70년대 젊은이들이 가졌던 시대 반항적인 면모가 곳곳에 유감없이 투영됐다.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고 카드를 치며, 항상 폭탄을 만들 궁리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당시 영국은 군사 문화의 잔재를 연상케 하는 소년단과 개성을 억누르는 교복, 호기심을 일체 인정않는 암기식 교육으로 학생들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과 흡사한 분위기다.
영화 속에 이런 시대상을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재능있는 신인이었던 제작진 덕분이었다.
대본은 '벅시 말론' '버디' '핑크 플로이드의 wall'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등을 만든 앨런 파커 감독이었고, 제작은 '벅시 말론' '버디' '미션' '로컬 히어로' '킬링 필드' 등을 만든 데이비드 퍼트넘, 감독은 인도 출신 워리스 후세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만든 것은 OST를 맡은 팝그룹 비지스였다.
유명한 주제가 'Melody Fair'를 비롯해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First of May' 'In the Morning' 등이 싱그럽다.
예전 고교 시절 성음에서 출반된 OST 카세트테이프를 지금도 갖고 있을 정도로 좋은 곡들이 많다.
더불어 우리들의 두 주인공 마크 레스터와 트레이시 하이드의 풋풋한 연기도 좋았다.
어린 시절을 그립게 만드는 앙증맞고 발칙하고 유쾌한 명작이다.
국내에 출시된 DVD 타이틀은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리마스터링을 거치지 않은 탓에 좋지 않다.
윤곽선은 가차없이 뭉개지며, 스크래치와 플리커링 등 잡티가 난무하고 색감도 뿌옇다.
무려 40년 전 작품이니 이해해야 할 듯.
그래도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다는게 어디인가.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군사 문화를 연상케 하는 소년단의 모습. 이 작품은 비지스 외에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 영의 노래도 쓰였다.
부모가 보는 신문에 불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악동같은 주인공. 역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억압적인 제도와 교육, 기성 세대와의 소통의 단절을 이 같은 장난으로 표현했다.
촬영은 영국 햄머스미스와 램버스에서 했다.
거리낌없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고 카드놀이를 하는 초등학생들. 그래서 70년대 초연 당시 국내 상영이 불가능했다고 하는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 듯 싶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소녀에게 반하는 성장통을 다뤘다.여기에 곁들여진 아름다운 비지스 노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뮤지컬 같은 작품이다.
하필 두 악동이 서 있는 곳은 '패튼대전자군단' 포스터 앞이다. 패튼으로 상징되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굳어진 군사 대국이자 세계 경찰국가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던 중이었으나 부도덕한 전쟁인 월남전으로 골치를 썩었다.
이 작품을 제작한 데이비드 퍼트넘은 당시 서른 살이었다. 광고 일을 하던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으며 감독을 친구인 워리스 후세인에게 맡겼다.
훗날 그는 친구인 알란 파커 감독의 '벅시 말론'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등을 제작하며 유명해졌고 '킬링 필드' '미션' '불의 전차' '로컬 히어로' 등 명작들을 잇따라 제작했다. 1986년 콜럼비아영화사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그의 작품 성향이 할리우드 오락물과 거리가 멀어 1년 만에 물러난 뒤 영국으로 돌아가 독립 영화 제작에 손을 대고 있다.
각본을 쓴 알란 파커 감독은 당시 27세였다. 소설가 지망생인 그는 친구인 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넘의 권유로 이 작품의 각본을 쓰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벅시 말론' '페임'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더 월' 등 사회고발적인 그의 작품들은 항상 음악이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연기한 마크 레스터(오른쪽)와 잭 와일드. 둘 다 이 작품 이전에 캐롤 리드 감독의 유명한 뮤지컬 영화 '올리버'에 출연했다.
출연 당시 12세였던 마크 레스터는 '올리버'에서 주인공 올리버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이 없는 그는 오히려 마이클 잭슨 때문에 매스컴을 탔다. 마이클 잭슨과 30년 지기 친구인 그는 잭슨이 남긴 세 자녀의 대부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트레이시 하이드. 영화 제목인 멜로디는 극중 그의 배역 이름이다.
폐공장에서 벌어지는 깜찍한 아이들의 결혼식. 당시 시대상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결국 결혼식을 막으러 달려온 교사와 아이들은 집단으로 난투극을 벌인다. 그러나 기관총을 난사하는 'if'처럼 심각한 폭력은 아니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악동들의 장난같은 유쾌한 난투극이다.
대립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폭탄을 던져 자동차를 날려버리면서 정점에 이른다.
그렇게 달아난 소년과 소녀는 미래의 희망을 보았을까. 마치 억압과 틀에 갇힌 제도를 상징하는 쇳조각 사이로 달아나는 그들의 모습을 잡은 엔딩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과 도피를 상징하는 것 같다. "행복해 지는 것이 왜 이리 어렵냐"고 묻던 멜로디의 대사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Melody fair' - Bee 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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