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들은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퍼즐 같다.
암시와 메시지, 복선으로 가득 찬 영상은 때로는 난해하기도 하지만 수천 조각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선사한다.
그 맛에 그리너웨이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가 1989년에 만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도 마찬가지.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영화는 잔인하며 폭력적인 도둑, 정부와 눈이 맞아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도둑의 아내, 그들을 돕는 요리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풍자한다.
전작인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나 '차례로 익사시키기'처럼 은유로 가득 찬 작품이지만 난해한 전작들에 비해 한결 보기 수월해졌다.
변함없는 것은 유화처럼 아름다운 영상들과 과격한 표현들이다.
어찌보면 미와 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상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아름다움과 추함을 확실히 대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작품 역시 성기 노출을 마다 않는 과격한 정사 장면 탓에 이번에 출시된 DVD 타이틀은 모자이크로 얼룩져 있다.
아울러 그리너웨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이 작품 역시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메인 테마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비장미가 감도는 메인 테마는 배경음악 뿐 아니라 장면 전환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너웨이의 초기 작품 2편이 국내에 DVD로 출시된 만큼 '차례로 익사시키기'도 블루레이 등으로 국내 출시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작품도 아주 재미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붉은 색은 심하게 번지고 샤프니스도 뚝 떨어진다.
특히 모자이크를 과도하게 한 탓에 영상이 더 좋지 않아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는 거의 없다.
부록도 전무하다.
<파워DVD로 순간 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공간이 바뀌면 의상의 색이 함께 바뀌는 점이 독특하다. 의상은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맡았다.
메뉴판의 요일이 바뀌면서 작품 속 열흘 간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려준다. 전작인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과 '차례로 익사시키기'의 숫자나 기호처럼 혼란을 주는 맥거핀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결 편해진 듯.
남녀 배우를 불문하고 과감한 노출 씬이 등장하는데,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깍두기처럼 큼지막한 모자이크가 등장해 이를 가려버린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17세기 네델란드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리너웨이의 영상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 따르는 여인'처럼 정갈하면서도 빛을 잘 다룬 베르메르의 그림을 닮았다.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도둑을 연기한 마이클 갬본과 그의 아내 역의 헬렌 메릴, 아내의 정부을 맡은 앨런 하워드.
이 작품의 묘한 매력은 횡 스크롤 같은 패닝이다. '올드보이'의 복도 싸움 장면처럼 배우들이 움직이면 카메라는 한 번도 컷 하지 않고 옆으로 길게 따라가며 한 호흡에 보여준다. 이처럼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패닝은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아름다운 음악 속에 폭발하듯 분출하는 폭력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요리사가 아내와 함께 막판 복수극을 꾸미며 내뱉는 "죽음아, 너를 먹겠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Yagudin 2003 WTC AP (음악 Michael Nyman -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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