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가량 차를 달리면 체스키 크롬로프라는 동화같은 마을이 나온다.
가는 길에 재미있는 소도시를 지나가게 된다.
체코어로 부드비제, 독일어로 부드바이저, 영어로 버드와이저.
짐작하듯 미국 버드와이저 맥주의 원산지다.
부드비제는 독특한 맥주기법으로 널리 알려진 '라거'라는 맥주를 만들었다.
이 맛을 본 미국 회사에서 만든 맥주가 바로 버드와이저다.
부드비제시는 최근 버드와이저사를 상대로 판매중지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그런데도 버드와이저사는 이 도시와 합의해 매년 소량의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부드비제를 지나쳐 1시간 가량 달려 유네스코가 1992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체스키 크롬로프에 도착했다.
이 곳의 300여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 유산으로 등록됐으니 시 전체가 문화 유산인 셈이다.
이 마을의 특징은 13세기에 건축된 체스키 크롬로프 성을 중심으로 중세 시대 마을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1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도로부터 아기자기한 건물들, 유명한 화가 에곤 쉴러의 그림까지 체코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산간 지방이다보니 날이 맑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지나가기도 하고 구름이 끼는 등 날씨가 변덕스럽다.
그러면서 여름에는 기온이 순식간에 3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이럴 때 체스키 크롬로프 성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을을 내려다보면 한 편의 동화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도착하자마자 유명한 로제 호텔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이곳 역시 옛날 궁을 개조해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식당은 만찬장으로 쓰였던 장소 같은데, 메뉴는 희한하게도 돈까스였다.
로제 호텔 앞 잔디밭에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멀리 체스키 크롬로프 성이 보인다.
하얀색 탑이 위로 솟은 건물이 바로 로제 호텔이다.
구불 구불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마을 중심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이 나온다. 16세기 이래 시 청사가 왼편에 위치한 이곳에는 1715년에 흑사병을 퇴치한 기념으로 성 삼위일체 탑이 서있다.
마을 곳곳에 창문을 그려 넣은 재미있는 집 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과거에는 창문 수에 따라 집을 평가해 세금을 물렸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창문을 뚫는 대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포석이 깔린 골목은 자동차 1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양 쪽으로 온갖 상점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중세 마을 답게 기사의 갑옷과 무기류 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체스키 크롬로프 성이 나온다. 위로 우뚝 솟은 종루 겸 전망대에 올라가면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돈을 내야 한다.
종루에 오르려면 이렇게 좁은 계단을 150개 이상 올라가야 한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통로.
올라가면 보람은 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을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저 다리를 건너면 체스키 크롬로프 성 입구가 나온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 양 옆에는 음식점, 술집, 음반점, 기념품점 등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종루에서 내려와 성 위쪽의 망토다리를 건너 계속 올라가면 왕의 정원이 나온다. 정원 한 복판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정원은 3단으로 구성돼 있다. 아래는 꽃밭, 중간은 미로, 맨 위에는 원형 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뿐 아니라 성 벽면에도 이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치 조각처럼 보이는 그림은 유치한 눈속임 같지만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여러 번의 전쟁과 흑사병으로 조각가 및 건축가들이 부족해 지면서 벽면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그림을 그려 넣은 것.
스보르노스티 광장에 위치한 상해반점. 지금은 중국집이지만 중세 시대에는 감옥이었다. 이곳에 죄수를 가두었다가 산 채로 곰 우리에 던져넣어 곰의 먹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대각선 방향에는 중세 시대 고문 도구를 모아놓은 고문 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기이한 천재화가 에곤 쉴러(에곤 실레)의 어머니 고향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였던 에곤 쉴러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로 화제가 됐다. 특히 비쩍 마른 여성의 신체를 즐겨 그렸는데, 김기덕 감독도 그를 좋아해 영화 '파란 대문'에 그의 그림을 사용하기도 했다. 에곤 쉴러는 이곳에서 3년을 보냈으나 소녀의 누드화 등을 그리다가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난다. 그후 오스트리아로 떠난 에곤 쉴러는 야한 그림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등 우여곡절끝에 결혼 하지만 아내가 임신 6개월째 독감에 걸려 죽은 뒤, 자신도 3일 만에 28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곳에 그의 박물관과 기념품점이 있다. 흑연 전체를 코팅해 만든 연필이 마음에 들어 샀다. 가격은 1자루에 0.9유로.
체스키 크롬로프. 언제 이 마을을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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