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고메즈 레존(Alfonso Gomez-Rejon) 감독의 '커런트 워'(The Current War, 2017년)는 과학영화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전기 전쟁을 다루고 있다.
위대한 천재로 꼽히는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과 그에 맞서는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미국이 채택할 전기 공급 방식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은 직류 방식을,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새넌 Michael Shannon)는 교류 방식을 각각 밀고 있었다.
레존 감독은 이 과정을 마치 무림고수의 대결처럼 두 사람의 싸움으로 묘사해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딱딱한 과학적 사실보다는 명확하게 다른 캐릭터 간의 갈등 구조로 전환돼 보기 편한 영화가 됐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적 재미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묻힌 점이다.
사실 인류사의 중요한 직류와 교류 전쟁은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아닌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의 싸움이었다.
에디슨 vs 테슬라
크로아티아가 낳은 위대한 천재 테슬라(니콜라스 홀트 Nicholas Hoult)는 전기가 보급되기도 전에 무선 이동통신의 원리를 제시했고 레이더와 광선 무기를 연구했던 뛰어나면서도 기이한 과학자였다.
교류도 웨스팅하우스가 아닌 수십 가지 중요한 관련 특허를 갖고 있던 테슬러가 제안했다.
그가 만든 발전기, 변압기, 모터 등이 없었으면 교류 시스템을 만들 수 없었다.
테슬러는 미국에 오자마자 에디슨을 찾아가서 교류를 제안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미 직류 시스템을 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배의 조명용 발전기를 고치는 까다로우면서 귀찮은 일을 맡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테슬라는 이를 금방 해냈다.
깜짝 놀란 에디슨은 테슬라가 대단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아봤다.
에디슨은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남달리 출중했다.
그래서 에디슨은 학자나 연구자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굳이 공부할 필요 없이 뛰어난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에디슨 회사에 채용된 테슬라는 직류 발전기의 효율을 개선할 시스템을 제안했다.
에디슨이 들어보니 좋은 아이디어였으나 발명하기 힘들다고 보고 완성하면 5만 달러를 보너스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테슬라가 몇 달 만에 완성하고 보너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농담이었다"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보너스를 주지 않았다.
대신 18달러였던 테슬라의 주급을 10달러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에디슨에게 속은 테슬라는 화가 나서 회사를 그만뒀다.
원래 에디슨은 선전선동과 남을 속이는데 능란했다.
"훔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경쟁력"
에디슨은 직류를 홍보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25센트씩 주고 개와 고양이를 사들여 교류로 죽이는 시연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전단을 통해 교류가 위험하다고 선전했다.
에디슨은 사람들이 가스등 대신 전등을 사용하도록 하려고 가스 폭발의 위험성을 알리는 회보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또 사람들을 고용해 각지를 돌며 가스등이 시력을 떨어뜨리고 건강을 해친다는 악선전을 하게 했다.
한때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를 위해 일하면서 웨스팅하우스의 경쟁자들에게도 같은 시스템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남의 아이디어도 곧잘 훔쳐 발명에 이용했다.
"모두가 무엇을 훔치려고 사업을 한다"는 것이 에디슨의 평소 지론이었다.
단 에디슨은 "남들이 모르는 훔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나의 경쟁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보기 좋게 에디슨에게 당한 테슬라는 사업에 서툴렀다.
회사를 차려 아크등을 발명해 팔았으나 오히려 회사를 빼앗기고 날품팔이 노동자가 됐다.
마침 테슬라를 부리던 현장 감독이 괴팍하고 기이하지만 비범한 테슬라를 웨스팅하우스의 경영자 A.K. 브라운에게 소개했다.
테슬라를 만난 브라운은 놀라운 교류 시스템 발명품 이야기를 듣고 테슬라를 영입해 테슬라전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테슬라 덕분에 교류 전기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게 된 웨스팅하우스는 당시 28세였던 테슬라를 찾아가 그의 모든 교류 특허를 사는 대가로 100만 달러와 1마력당 2.5달러의 특허료를 제시했다.
에디슨이 동물을 죽이는 시험을 계속하면서 교류가 위험하다고 악선전하는 동안 웨스팅하우스는 교류의 안전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꾸준하게 벌였다.
교류의 승리 뒤에 숨은 JP 모건의 야심
결과는 교류의 승리였다.
에디슨의 직류는 인구가 밀집된 좁은 곳에서는 괜찮았으나 전송거리가 길어지면 비용이 많이 들고 에너지 손실이 컸다.
이후 테슬라는 35세 때 유명한 테슬라 코일을 발명했고 37세 때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을 밝힌 전기 조명을 설계했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의 지원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 세계 최초의 교류 발전소도 설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에디슨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J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모건(매튜 맥퍼딘 Matthew MacFadye)은 다른 사업처럼 전기 사업 또한 교류와 직류 회사들을 모두 장악해 독점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모건은 전기 전쟁에서 패한 에디슨을 물러나게 하고 에디슨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사를 합병해 제너럴 일렉트릭, 우리가 잘 아는 GE를 만들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마저 인수해 GE에 합병하려고 했다.
모건이 간절하게 원한 것은 웨스팅하우스라는 회사보다 테슬러의 수십 가지 교류 관련 특허였다.
테슬라의 특허가 있어야 전기 사업을 천하 통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싸움으로만 그렸다.
테슬라도 나오지만 분량이 아주 미미해서 그 덕분에 교류 시스템이 보급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힘들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다.
마치 프로야구의 영원한 라이벌 롯데와 해태의 싸움을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는 두 대표 인물의 싸움으로 치환한 영화 '퍼펙트 게임'처럼 레존 감독은 직류와 교류 전쟁을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싸움으로 그렸다.
잘못 나선 대표선수
문제는 대표 주자를 잘못 선택했다는 점이다.
사업가인 웨스팅하우스가 아닌 테슬라가 나서야 맞다.
잘못된 인물 선정을 통해 미국 영화의 명백한 한계가 드러난다.
테슬라는 미국이 아닌 크로아티아가 낳은 위대한 천재다.
미국이 사용하는 전기 시스템뿐만 아니라 갖가지 현대 과학기술이 이방인인 테슬라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할리우드는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의 편협한 모습을 그리는 것 또한 껄끄러웠을 수 있다.
그래서 에디슨이 고집이 세기는 했지만 발명 때문에 아내마저 잃은 비운의 천재처럼 묘사됐다.
마치 아문센과 스콧의 대결에서 불운하게 밀린 스콧처럼 희생자로 그렸다.
하지만 에디슨은 결코 스콧처럼 학자적 양심과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상술에 밝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주저함이 없던 사업가적 면모가 강한 인물인데 그런 부분을 쏙 빼놓고 억지로 그려 넣은 후광만 부각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흥미롭다.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떠나 긴장감 넘치는 갈등 구조를 극적으로 잘 만들었고, 그 속에서 에디슨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비치의 연기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보게 된다면 그 또한 이 작품의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풍경을 잘 살린 영상 또한 뛰어난데,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을 찍은 정정훈 촬영감독의 솜씨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차분한 색감과 디테일이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각종 효과음이 각 채널에 적절하게 잘 분배돼 있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삭제 장면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 또한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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