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우드러프 감독의 '허니'(Honey, 2003년)는 관능적인 여인의 몸매로 유혹하는 댄스 영화다.
어찌 보면 줄거리나 구성이 제니퍼 빌즈의 '플래시댄스'와 흡사하다.
빈민가에서 성공을 꿈꾸는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점이나 고난도 댄스를 대역이 대신한 점이 그렇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제시카 알바도 제니퍼 빌스를 연상케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평론가들은 "플래시댄스를 비롯해 기존 댄스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훔쳐온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그래도 댄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예쁘장하고 매력 넘치는 제시카 알바의 관능적인 춤과 신나는 힙합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훔쳐왔든 어쨌든 댄스 영화의 기본은 한 셈.
대신 무엇이든 가슴에 남는 것 하나를 건져가야겠다는 기대는 하지 말 것.
그럴 경우 상투적인 내용과 늘어지는 결말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막판 청소년들을 위한 자선모금 공연을 벌이기까지 과정이 다소 진부하다.
어차피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
그런데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주인공 허니가 연예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된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 사적인 파티에 허니를 초대한 장면이다.
허니는 파티 장소에서 2층에 따로 올라가 전화를 하던 중 뮤직비디오 감독과 단둘이 남는다.
그때 뮤직비디오 감독은 허니를 끌어안으려 하고 허니는 "이러지 말라"며 아주 세게 뺨을 때린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는 뮤직비디오 감독의 위협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허니는 파티장을 박차고 나간다.
이는 명백한 성폭력이다.
특히 뮤직비디오 감독은 자신의 영향력을 들먹이며 허니를 압박했다.
이는 누가 봐도 위계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이다.
극 중 허니는 파티장 사건 이후 사실상 주류 연예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한다.
심지어 저급한 뮤직비디오 출연이라도 해보려고 오디션을 보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여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허니는 이후 파티장 사건을 만천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허니가 밝히지 않아 관객이 구체적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허니가 완강한 거부 표현을 했고 이 때문에 고초를 겪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허니처럼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허니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요즘 미투 운동이 확산되다 보니 과거와 달리 새삼스럽게 이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성폭력 대처나 미투를 위한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눈이 즐거운 영화인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국내에 블루레이 타이틀이 출시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은 한글 자막이 없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디테일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특별한 잡티나 스크래치도 없고 역동적인 화면을 잘 잡아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확실하다.
특히 묵직하게 쿵쿵 울리는 클럽 사운드의 저음을 잘 표현했다.
아쉬운 것은 부록이다.
미국판 블루레이 타이틀은 부록이 전혀 없다.
과거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의 경우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삭제 장면, NG 장면, 댄스 강의, 뮤직비디오 영상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미국판 블루레이 타이틀에서는 통째로 사라져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제니퍼 빌즈를 닮은 제시카 알바가 주인공 허니를 연기.
원래 이 영화는 미국 배우 겸 R&B 가수인 알리야를 염두에 두고 대본이 완성됐다. 알리야도 주연을 맡기로 했으나 촬영 전인 2001년 8월 알리야가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허니의 강아지는 실제 제시카 알바의 개다. 제작진은 개가 하도 부산스러워 촬영을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소파와 침대 등에 개를 묶어놓고 찍었다.
제시카 알바는 원래 춤을 좋아했지만 이 작품 출연을 위해 3개월간 매일 6시간씩 발레, 재즈, 힙합춤을 배웠다.
제시카 알바의 얼굴이 보이는 정면 샷이나 간단한 안무 외에 고난도 힙합 모션은 모두 대역이 춤을 췄다.
빌 우드러프 감독은 원래 뮤직비디오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안무 장면의 대부분이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 촬영 장소는 캐나다의 토론토다. 허니의 아파트 내부는 세트다.
원래 이 작품은 유명 안무가인 로리앤 깁슨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다. 로리앤 깁슨은 극 중 허니의 경쟁자인 댄서 카트리나로 나온다.
제작자는 은행가 역할로 제니퍼 빌즈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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