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07년)은 순정파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순애보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설가 민우(강동원)가 백일몽같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첫 사랑 미미(이연희)와의 아름다우면서 가슴아픈 추억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를 이명세 감독만의 뛰어난 영상화법으로 포장했다.
덕분에 '형사'에서 보여준 마약같은 중독성을 가진 독특한 비주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작인 '형사'도 아름다웠지만, 이 작품은 '형사'보다도 더 진일보한 영상미를 지닌 수작이다.
마치 고흐의 그림처럼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한낮의 거리, 강렬한 명암대비는 언뜻보면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처럼 잠에 취한 듯 나른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 정훈희가 부른 '안개'는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심지어 음악까지 사람을 유혹하듯 나른하다.
반면 단순 명쾌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하다면 모호한 내러티브는 치명적인 독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영상이 손해를 본다.
따라서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말고 가슴으로 봐야하는 영화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블루레이가 아닌 것이 아쉽다.
워낙 탁월한 미적 감각이 빛나는 영상이어서 샤프니스가 높지않은 DVD의 태생적 한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블루레이였다면 아마 영상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배경 음악에서 리어 활용도가 높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강렬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한낮의 거리는 백일몽인듯, 현실인듯 모호하게 출렁인다.
일부 장면은 몽환적인 느낌을 강조하듯 영상이 상당히 소프트하다.
한 프레임 안에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장면. 어둠 속에 숨고 빛 속에 나타나는 숨바꼭질은 '형사'의 담장 씬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에서 영상 못지 않게 인상적인 점은 바로 오디오의 왜곡이다. 의도적인 소리 찌그러트리기와 비틀기는 그때그때 긴장감과 강박관념을 불어넣으며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전달한다.
이명세의 탁월한 영상 감각이 전작보다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바로 반사영상이다. 이 작품은 거울, 유리문 등 반사 영상을 사용한 장면이 여러 군데 보인다. 반사 영상은 멀어지는게 다가오는 것이며, 다가오는게 사라지는 것이어서 꿈과 현실이 구분 안가는 모호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극단적인 어둠에 공간에 놓인 등장인물들은 소리의 왜곡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프리즈 프레임에 갇히는 등 시간의 왜곡 속에도 놓여있다. 어차피 꿈과 현실을 불분명하게 오가는 상황 자체가 왜곡이다.
정훈희의 '안개'를 사용한 점도 돋보였다. 이 노래는 우연히 선택됐다. 이 감독이 극본 작가들과 노래방에 놀러갔는데, 누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어 쓰기로 했단다. 정하고 보니 곡목을 영어로 바꾸면 Misty여서, 영화 제목인 'M'과도 잘 어울린다. 엔딩 타이틀의 '안개'는 보아가 불렀다.
이런 장면도 이명세의 탁월한 영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선, 직선 등 다양한 선들이 화면을 분할하며 의식과 소통의 단절을 암시하는 듯 하다. 촬영은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등을 찍은 홍경표 촬영감독의 솜씨.
이 감독은 도시의 수직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2.35 대 1의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1.85 대 1의 비스타비전 사이즈를 택했다. 좌우를 좁히며 위 아래를 늘리면 당연히 수직적 느낌이 강조되며 좁힌 공간만큼 어둠이 생긴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상이다. 푸른 달빛에 물든 천막은 바람에 부드럽게 일렁이고 잘 익은 복숭아빛 백열등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마치 시 같은 이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옥상 씬을 연상케 한다. 강동원의 머리 모양도 잘 보면 M자 모양이다.
완벽한 미장센이 빛나는 장면. 한치의 빈틈없이 공간을 가득메운 소품과 인물, 그리고 빛은 대사가 없어도 분위기와 상황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첫사랑의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 이 장면은 세트 촬영했다.
이 작품은 요즘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디졸브와 명암을 이용한 점프 컷을 사용했다. 명암을 이용한 점프 컷은 마치 페이드 인 & 아웃같은 효과를 낸다.
지극히 추상적인 장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영상이지만 그만큼 추상적이어서 루이스 부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보는 것 같다. 극도의 명암은 흑백영화처럼 피사체를 조각내며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 감독은 뉴욕에서 작가 최인호를 만났다. 그때 최인호는 "꿈은 산자와 죽은 자가 소통하는 통로"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거기서 이 감독은 영감을 얻었단다.
소리와 영상, 시간의 왜곡 뿐만 아니라 공간의 왜곡도 있다. 일식집 장면은 민우의 심경에 따라 그때그때 공간의 크기가 달라진다.
DVD 부록을 보면 이동진씨는 이 작품을 자각몽의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꿈인 줄 알고 꾸는 꿈이라는 뜻.
강동원, 이연희, 공효진, 송영창, 전무송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음악과 영상도 너무 훌륭했다. 그래서 흥행 실패가 더더욱 아쉽다. 이런 작품이 성공해야 작가주의 작품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 DVD 타이틀 만이라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