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아비정전 (블루레이)

울프팩 2010. 8. 19. 08:42

나른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턴테이블에서 맘보 음악이 바람 불 듯 흘러나오고, 여기 맞춰 청년이 흐느적거리듯 춤을 춘다.
잊을 수 없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Days of Being Wild, 1990년)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세기말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했던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투영한 작품이다.
영상이나 구성이 꽤나 공들여 잘 만든 작품인데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왕가위의 데뷔작이었던 '열혈남아'에 매료된 사람들이 또다시 툭툭 끊어지는 듯한 빠른 몽타주 기법의 액션과 열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다가 너무나 긴 호흡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열혈남아'와 너무 다른 작품이다.

마치 오래전 60년대 영화를 보는 듯 단색조의 영상과 롱 테이크, 정지화면처럼 대사가 거의 없이 집요하게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는 화면은 느와르로 대표되는 홍콩 영화라기 보다는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듯 하다.
아닌게 아니라, 왕가위가 본격 예술 영화를 지향하고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흥행 실패로 왕가위는 아비정전의 후속작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 양조위가 반짝 등장하는 엔딩은 무려 10년이 지난 2000년에 '화양연화'라는 걸작으로 꽃 핀다.

이 작품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 각종 실험들을 왕가위는 '화양연화'로 끝을 맺는다.
약간은 치기 어린 어설픈 부분도 보이지만 이 작품은 왕가위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1080p 풀HD 영상의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판을 구입하면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깨끗한 영상을 기대하고 블루레이를 구입했다면 초반 화질에 실망할 수 있다.
샤프니스만 또렷할 뿐 뿌옇고 배경이 지글거려 블루레이로서는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 수록 안정되는 등 화질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음향은 DTS HD 7.1 채널을 지원한다.
리어 활용도가 높고 현의 울림이 좋아서 음향은 DVD보다 확실히 들을 만 하다.
부록은 전무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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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맘보 음악에 맞춰 장국영이 춤을 추던 잊을 수 없는 명장면. CF에서 인용되는 등 아주 유명하다. 음악이 너무나 좋은 왕가위 작품답게 이 작품 역시 매염방이 부른 주제가 등 음악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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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앳된 청년이었던 장국영. 그러고보니 그가 자살한 지 7년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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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에 이어 이 작품에도 얼굴을 내민 장만옥 또한 출연 당시 26세로 한창때였다. 그는 이 작품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화양연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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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에서 뭇 청춘들을 설레게 했던 히어로 유덕화는 그저 멀리서 사랑을 지켜보는 역할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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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에서 말썽장이 동생으로 나왔던 장학우가 장국영의 친구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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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도 자기 복제가 심한 감독이다. 그의 작품들을 쭉 보다보면 여러 작품에서 중첩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구도와 인물의 배치는 훗날 '중경삼림'에서 되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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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는 이 작품에서 극도의 클로즈업과 부감샷 등 다양한 영상을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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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이었던 '열혈남아'에 비해 이 작품의 영상은 성미급한 관객이 못견딜 정도로 너무나 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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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가 스텝 프린팅으로 툭툭 끊어지는 독특한 액션을 선보인데 반해 이 작품은 롱테이크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는 영상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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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유명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손을 잡고 핸드헬드로 흐르는 듯한 롱테이크 영상을 선보였다. '열혈남아'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유위강은 제 2 촬영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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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어질 듯 하면서도 비껴가는 인물들의 교차 시선과 앵글이 자주 보인다. 불안하면서도 안타까운 그들의 모습이 당시 홍콩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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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잠깐 등장하는 엔딩. '화양연화'를 보았다면 너무나 낯익은 장면이다. 그렇게 영화는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화양연화'로 이어진다.

아비정전 열혈남아 HD텔레시네 리마스터링(DVD)
왕가위 감독/장국영 출연/장만옥 출연/유덕화 출연/양조위 출연/장학우 출연
아비정전(DVD)
왕가위 콜렉션 (4Disc,DVD)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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