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리메이크 11

감시자들 (블루레이)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공동연출한 '감시자들'(2013년)은 철저한 허구를 바탕으로 한다. 홍콩의 유내해 감독이 만든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무대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겼다. 촘촘히 깔린 폐쇄회로(CC)TV를 통해 서울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며 기억력이 좋은 경찰들이 일반 시민으로 위장해 범죄 용의자들을 하루 종일 미행하는 경찰 특수조직의 이야기를 다뤘다. 마치 우주관제센터 같은 감시반 풍경이 보기에는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모두 가짜다. 경찰에는 실제 이런 조직이 없다. 더러 경찰청 본청 산하의 범죄정보과를 유사조직으로 언급하지만 역할과 기능이 영화와 전혀 다르다. 조현오 전 청장이 2011년 신설한 범죄정보과는 굵직한 정치, 경제계 정보를 내사해 범죄 사실이 발견되면 관련 수사팀에..

장고 : 분노의 추적자 (블루레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년)는 주인공 이름과 주제가만 빌려 왔을 뿐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1966년에 만든 원작인 '쟝고'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따라서 코르부치의 원작 서부극을 봤다면 깨끗이 잊어버리고, '펄프픽션' '킬 빌' 등 재기 넘치는 타란티노식의 퓨전 서부극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 타란티노 감독이 이 작품에서 겨냥한 것은 노예제에 뿌리를 둔 미국의 인종 차별이다. 내용은 도망 노예 신분에서 현상금 사냥꾼이 된 흑인 장고가 어디론가 팔려간 아내를 찾고 못된 백인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장르는 서부극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노예 인신매매부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모임인 큐클럭..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 1968년)하면 피어스 브로스넌과 르네 루소가 나온 1999년 작품을 떠올릴 수 있으나 원작은 스티브 맥퀸과 페이 더너웨이가 출연한 1968년 작품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리메이크작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원작이 재미와 작품성 면에서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원작은 백만장자가 재미삼아 은행을 털고 이를 보험회사의 여성조사원이 뒤쫓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로맨스와 미스테리를 적절히 섞어 만들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스티브 맥퀸이다. '킹 오브 쿨'로 불렸던 맥퀸은 이 작품에서 쫓기는 순간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으면서 여심을 송두리째 흔드는 최고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토마스 크..

중독

같은 날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형제가 나란히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오래도록 혼수상태였던 두 사람 가운데 동생만 깨어난다. 그런데 몸은 동생인데, 생각과 행동은 형이다.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현상이다. 주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시동생은 자연스럽게 형수를 아내처럼 대한다. 결국, 형수는 부부끼리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시동생을 남편의 현신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동생은 정말 빙의일까. 이쯤되면 사랑이 아니라 광기다. 박영훈 감독의 영화 '중독'(2002년)은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사랑을 보여준다. 오래전부터 마음 속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갖기 위해 꾸미는 한..

만추 (블루레이)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0년)는 탕웨이를 위한, 탕웨이의 의한, 탕웨이의 영화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탕웨이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물론 주연남녀배우가 나눠진 작품의 무게는 똑같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난 존재는 단연 탕웨이다. 특히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하게 변하는 탕웨이의 표정 연기는 일품이다. 오죽하면 김 감독이 "탕웨이는 미세한 얼굴 근육을 모두 쓰는 배우"라고 평했다. 김 감독은 "요즘 우리 배우들은 분장이나 튜닝 때문에 얼굴의 미세근육이 사라져 표정연기가 아쉬운데, 탕웨이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이 거듭 탕웨이의 연기를 칭찬한 것은 이 영화는 대사보다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1966년 이만희 감독의 동명원작과 동일하다. 여죄수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교도소에서 사흘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