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스칼렛 요한슨 20

천일의 스캔들

영국 왕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앤 불린은 영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그는 우선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여왕 자리에 오르면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열었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도 그 때문에 도입됐다. 헨리 8세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추진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반대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헨리 8세는 천주교를 국교에서 폐하고 왕이 중심에 서는 성공회를 만든다. 영국의 국교를 바꾸고,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연 앤 불린은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가슴 속 가득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왕비를 내쫓고 새로운 왕비가 되지만 그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1,000일 만에 폐비가 돼서 처참하게 목이 잘렸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저스틴 채드윅 ..

아일랜드

철학자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세상은 영화 같은 인간 세포 복제를 얘기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진위 논란을 떠나 세포 복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곧 인간 복제가 된다. 마이클 베이(Michael Bay) 감독은 '아일랜드'(The Island, 2005년)에서 인간 복제가 이뤄지는 미래를 다루고 있다. 미래의 인류는 병이나 사고에 대비해 복제 인간을 만들어놓고 신체에 문제가 생기면 복제 인간의 장기로 대체한다. 은행에 예금하듯 복제 인간을 통해 영생을 예금하는 셈이다. 과연 사람을 복제하는 미래는 행복할까. 마이클 베이 감독은 디스토피아로 봤다. 지상낙원의 유토피아라면 사건도 없고 심심할 테니 영화를 만들기 위해 디스토피아는 불가피한 선택이겠..

판타스틱 소녀백서

테리 즈위고프(Terry Zwigoff) 감독의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 2001년)는 독특한 영화다. 별반 내용이 없는 듯 하면서도 보고나면 묘한 뒷맛이 느껴지는 커피같은 작품이다. 고교를 졸업한 여고생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다니엘 클로우즈의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를 본 즈위고프 감독은 원작자를 만나 영화를 만들었으며 존 말코비치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주인공을 맡은 도라 버치(Thora Birch)의 외모와 연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데이비드 키테이의 음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특히 엔딩 장면에 흐르던 피아노 연주는 은근히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평범한 화질이다. 음향은 돌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코엔 형제는 그동안 작품들로 미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이다. '파고' '레이디킬러' '밀러스 크로싱'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등 여러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아니 심지어 죽기까지 하면서도 늘 빈 손이다. 세상이 이들의 작품 같다면 참 살기 힘들 것 같다. 어찌 보면 머리 굴리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는 얘기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선량한 사람들마저 골탕 먹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조엘 코엔(Joel Coen)이 감독하고 에단 코엔(Ethan Coen)이 함께 각본을 쓰고 제작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2001년)도 마찬가지. 촌마을 이발사(빌리 밥 손튼 Billy Bob Thornton)가 어느 날 손님에..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 중년 남성과 20대 유부녀의 흔들리는 사랑을 단아하게 표현. DVD 화질은 부드러운 편. 물로 씻은 듯 매끈한 영상은 잡티하나 없다. DTS 음향은 배경음악의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추천할 만한 타이틀. 이 작품은 마치 도쿄 투어 가이드 같다. 신주쿠 야경. 황혼의 스타를 비유한 걸까. 빌 머레이가 도쿄를 떠나기 전날 저녁. 샬롯을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 그의 배는 왜 임산부처럼 불룩 튀어나온 걸까? 광고촬영차 도쿄에 온 할리우드 스타 밥을 연기한 빌 머레이. 초록색이 제대로 살아 있다. 샬롯은 밥을 만나며 은근히 정이 든다. 저 종이에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은은한 음악에 실린 애절한 사랑의 여운. 그래서 이 작품속 사랑은 단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