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스페인 26

줄리에타 (블루레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Julieta, 2016년)는 독특한 영화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만남과 이별을 강조하듯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함께 이야기한다. 영화는 줄리에타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우연히 기차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여인은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바닷가 마을에 사는 남자를 찾아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지면서 여인은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한다. 여인은 사랑했던 존재들이 곁을 떠나자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들의 빈자리를 보며 새삼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이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퇴화한 생물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활을 놓아버렸던 여인은 어느 ..

돈 조반니

모짜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작곡가 못지 않게 작사가도 유명하다. 작사가는 바로 로렌조 다 폰테다. 로렌조 다 폰테는 특이한 삶을 산 인물이다. 베니스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천주교로 개종해 신부가 됐다. 하지만 본래 타고나기를 술과 음악, 여자와 도박을 너무 좋아했다. 결국 신부가 돼서도 바람둥이처럼 살다가 들켜서 사제단의 명령으로 15년 동안 베니스에 돌아올 수 없는 추방형을 받았다. 그때 평소 친하게 지냈던 유명한 역사적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조언에 따라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 다 폰테는 그곳에서 뛰어난 천재 모짜르트를 만나 가극을 쓰게 됐다. 특히 그가 대본을 쓴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는 다 폰테 3부작으로 불린다. 그만큼 모짜..

노인들

흔히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발견했다. 퇴행성 뇌질환인 이 병은 서서히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기억을 잘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판단력이 떨어져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보통 65세 이후에 발병하는데 더러 40대 미만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젊은 여성 이야기를 다뤘다. 젊은 나이에 걸리면 병의 진행속도가 빠르다. 발병 원인은 간단하게 말해 뇌 기능을 저하시키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그렇다는데, 유전적 요인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가족 중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발병 확률이 높다. 문제는 아직까지 치료방법이..

그녀에게 (블루레이)

스페인의 유명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그리는 사랑은 독특하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같은 작품을 보면 세상에서 결코 흔치 않을 것 같은 꼬일대로 꼬인 사랑이 등장한다. '그녀에게'(Hable Con Ella, 2002년)도 예외가 아니다. 극 중 인물들이 벌이는 사랑은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자신을 모두 버리는 헌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범죄로 보일 망정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마냥 신기하고 특이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관객은 마치 자극적인 옐로 페이퍼를 보는 것 처럼 오히려 이 점을 좋아한다. 물론 이 과정은 지극히 드라마투르기적이다. 공교롭게 뇌사상태에 빠진 두 여인을 좋아하는 두 남자가 만나서 친구가 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블루레이)

이제 조금 있으면 IT 기자들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몰려간다. 매년 2월이면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주관하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가 신기했으나 일 때문에 몇 차례 다녀오면서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 2008년)에서 눈에 익은 바르셀로나 풍경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이 영화는 황당한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우디 앨런의 독특한 작품이다. 즉, 슬랩스틱이나 말장난이 아닌 상황 자체를 어이없게 만들어 실소를 자아내는 식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판타지 같은 분위기로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자극했다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동물의 왕국 같은 분위기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