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달수 30

방자전 (블루레이)

'음란서생' '방자전'으로 이어지는 김대우 감독 작품의 묘미는 기발한 비틀기에 있다. 점잖은 양반들을 음란 소설 작가로 둔갑시킨 '음란서생'에 이어 '방자전'(2010년)에서는 진정한 로맨스의 주인공을 하인인 방자로 바꿔 놓았다. 헛웃음 나올 법한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럴 법 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한 것은 탄탄한 구성이다. 양반이나 하인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미인을 보고 느끼는 사랑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이도령과 방자, 춘향과 향단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고도의 심리 로맨스가 돼버렸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김대우 감독의 비틀기다. 이도령은 유희 같은 사랑과 출세를 위해 여인을 이용하는 양반으로, 춘향 역시 팔자를 고쳐보기 위해 남자를 노리는 여인네로 나온다...

박쥐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은 워낙 이색적인 소재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이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자극적이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를 추구한다. '박쥐'(2010년)는 그런 그의 특성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흡혈귀가 돼버린 성직자가 밤마다 피를 찾아 헤메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 속에서 신의 용서를 갈구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하지만 감독의 특성에 부합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흡혈귀라는 이질적인 소재 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나마 복수 3부작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정말 박 감독이 머리 속에서 그려낸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작품이다. 피를 갈구하는 성직자,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는 유부녀, 한옥에서 즐기는 마작 등 이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싱글즈' 개봉 무렵 배우 장진영을 만났다. 엄정화와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차분하면서도 강단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년)에서 보여준 장진영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장진영에 대한 기억과 겹쳐 그가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진영은 이 작품에서 애인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술집 여자로 나와 적당한 독기와 열정으로 불꽃처럼 타올랐다. '국화꽃 향기' '싱글즈' 등에서도 열심히 연기했지만 이 작품 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장진영은 이 작품이 흥행에 참패한 뒤 출연을 후회했다고 한다.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이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본인은 아쉬운 부분이었겠지만..

박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그런 작품이다. 박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칸 영화제 진출 소식과 박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등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쓰리'도 그랬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이 박 감독과 잘 안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철저한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성직자이면서 악마의 상징인 흡혈귀로 살아가는 남자와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

영화 2009.05.05

그림자 살인

탐정물의 재미는 수수께끼 풀이와 일맥 상통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뇌 플레이는 곧 제작진과 관객의 싸움이다. 한국의 탐정물을 표방한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은 그런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의 비밀을 푸는 탐정(황정민)과 그 일행(류덕환, 엄지원)의 활약을 다룬 스토리는 치밀했지만 관객과의 게임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선이 적절하게 스며들어간 이야기는 나름대로 탄탄해서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종반으로 치달을 수록 사건의 해결 과정이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유는 한가지, 추리극의 기본 원칙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추리극은 초반에 제시된 인물들 속에서 범인이 등장하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결코 독자..

영화 2009.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