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왕가위 15

일대종사 (블루레이)

원래 쿵후(功夫)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워서 숙달하는 것을 말한다. 쿵후의 시조는 16세기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도에서 온 선승 달마대사가 꼽힌다. 멸청복명의 쿵후 중국 소림사에 당도한 달마대사는 성격이 완고해 승려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근처 동굴에서 9년을 혼자 살았다. 70세 노인이 돼 소림사에 돌아온 달마대사는 승려들이 수양 중에 조는 모습을 보고, 수양만 하다가 체력이 부실해진 승려들을 위해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동작을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쿵후의 시작이다. 물론 쿵후는 출발이 그렇듯, 싸움 동작도 포함돼 있지만 무술이라기보다는 생명력의 근원인 기를 기르는데 목적이 있다. 주먹으로 말아쥔 오른손을 쫙 편 왼손 바닥에 붙이는 쿵후식 인사법은 원래 해와 달을 상징한다. 바로 한자의 명(明)..

화양연화 (블루레이)

왕가위 감독의 걸작 '화양연화'(2000년)는 엇갈린 인연과 사랑에 대한 영화다.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기한 남과 여는 묘하게도 얽힌 인연 때문에 바람을 피는 불륜의 관계이지만, 그들은 끝까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고집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이상의 진전을 원치 않고 서로의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서로가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가슴에 남는 것은 안타까운 그리움과 회한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나간 사랑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의미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로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낯선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으로 발전했다가 남남이 된 후 서로가 그리워 하는 감정의 변화를 농..

열혈남아 (블루레이)

어떤 판본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걸작 '열혈남아'(1987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열혈남아-골든-콜렉션)는 왕걸과 엽환의 노래 '汝是我胸口永遠的通'(너를 보낸 내 가슴은 아프고)로 기억한다. 유덕화가 장만옥의 팔을 낚아 채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든 뒤, 하얗게 부서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열렬하게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왕걸의 CD를 듣다가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가슴이 뛰며 아련함이 밀려 온다. 그만큼 왕걸과 엽환의 노래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의 장면들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가 없는 '열혈남아'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극단..

홍콩 - 소호

홍콩섬을 가보면 왜 홍콩이 국제도시로 각광을 받는 지 알 수 있다. 온갖 금융기관의 아시아태평양 헤드쿼터가 즐비하고, 여기 맞춰 고층건물과 으리으리한 쇼핑몰, 온갖 맛있는 레스토랑이 빼곡하다. 구룡이 서울의 강북이라면 홍콩섬은 서울의 강남 같은 곳. 그 경계를 바다가 가르고 있다. 구룡의 스타페리 선착장에서 10~15분 간격으로 밤 12시까지 운행하는 페리를 타면 8분 가량 걸려 홍콩섬에 도착한다. 날씨가 궂거나 배를 타기 싫다면 구룡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만 가면 홍콩역이다. 홍콩섬은 쑤하우, 즉 소호로 알려진 센트럴과 셩완, 완차이, 코즈웨이 베이 등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주로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센트럴이다. 높이 400m가 넘는 홍콩 국제금융센터(IFC)를 비롯해 홍콩 최대 쇼핑몰인 I..

여행 2012.02.11

홍콩 - 구룡 & 침사추이

홍콩 영화를 보면 늘 궁금했던 한 가지가 있다. 홍콩 사람들에게도 소속감이 있을까. 홍콩은 중국의 섬 같은 존재다. 오랜 세월 영국의 조차지로 식민지 아닌 식민지 생활을 하며 중국과 다른 삶을 살았고, 중국에 반환된 지금도 본토와는 또다른 문화를 지닌 낯선 타향 같은 곳이다. 영국도 아니요, 중국도 아닌 무국적자처럼 지낸 홍콩 사람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대항전에서 과연 누구를 응원할 지, 아니 과연 우리가 맹목적으로 느끼는 최소한의 애국심이라도 있을 지 궁금했다. 그래서 홍콩 영화들은 늘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월6일부터 사흘 동안 찾은 이번 홍콩여행에서도 그런 것을 여실히 느꼈다. 1999년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

여행 201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