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재영 16

우리 선희 (블루레이)

한 여자를 아는 세 남자가 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한 여자와 친구 이상의 각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들에게 여자는 각각의 상대이지만, 세 남자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아는 '우리의 여자'다. 홍상수 감독은 이 미묘한 차이를 1시간 28분의 시간 안에 재미나게 풀어냈다. '우리 선희'(2013년)는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만의 시각이 돋보이는 독특한 영화다. 모두의 연인이면서 각자의 연인인 선희가 보여주는 입장차를 각각의 남자들이 펼쳐내는 논리 속에 잘 살려냈다. 특히 상대의 따라 바뀌는 남자들의 논리는 진실을 가장한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식인 연하는 먹물들의 허장성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을 허망한 웃음과 황당한 상황으로 잘 다듬어낸 작품이다. 굳이 다듬었다는 표현 자체가 무색할 ..

이끼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를 보기 전에 윤태호가 그린 원작 만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내용을 미리 알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그림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를 담백하게 볼 수 있었다. 원작을 배제하고 본 영화는 밀실 추리소설 같은 작품이다. 비록 주인공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다양한 인물과 공간이 등장하지만 사건의 무대는 권력자인 이장이 지배하는 어느 외딴 마을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어느 노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은 결국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점에서 밀실 추리소설과 다름없다. 그만큼 영화는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곧 주어진 5장의 패를 들고 승부를 걸어야 하는 포커게임 같다는 소리다. 얼마 되지..

영화 2010.07.17

공공의 적 1-1 강철중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1-1 강철중'(2008년)은 제목이 보여주듯 1편의 인기에 기댄 작품이다. 전작에 좌충우돌 막무가내 형사로 인기를 끈 강철중(설경구)은 물론이고 엄 반장(강신일), 무식해서 웃음을 줬던 산수(이문식), 전문 칼잡이 용만(유해진) 등이 그대로 등장한다. 그런데 제목과 배역만 빌려왔을 뿐 재미까지 가져오는데는 실패했다. 전작에서 폭죽처럼 터졌던 웃음은 사그라들었고, 천인공노할 악역에 대한 공분도 희석됐다. 전작은 탄탄한 드라마 덕분에 웃음이 터지는 코미디이면서도 적당한 스릴러의 구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전작의 분위기만 흉내냈을 뿐 스릴러하고는 거리가 멀다. 경찰서에 찾아온 범인과의 대면, 시체실 부검, 오밤중 결투까지 전작을 너무 흉내냈다.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

강철중 공공의 적 1-1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년)은 제목이 말해주듯 1편의 아류작이다. '공공의 적 3'가 아닌 굳이 '공공의 적 1-1'을 고집한 이유는 1편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강 감독의 의지다. 워낙 2편이 형사에서 검사로 비약하는 등 뜬금없이 주인공의 설정이 바뀌면서 이야기 방향 또한 크게 달랐기 때문. 그만큼 2편은 좌충우돌 막무가내 형사인 강철중의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하고 흥행 실패작이 돼버렸다. 결국 강 감독이 1편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를 반영하듯 강철중은 강동서 강력반으로 돌아왔고, 강신일이 연기한 반장, 1편의 산수 캐릭터를 연기한 이문식, 칼잡이 유해진 등 조연 캐릭터들까지 그대로 살아났다. 아쉬운 것은 1편만큼 이야기의 임팩트가 강하..

영화 2008.07.13

바르게 살자

일본의 유명한 각본가인 사이토 히로시는 우리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재기발랄하다. 그가 각본을 쓴 '사무라이픽션' '환생'이 그랬고, 그의 원작을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옮긴 '도둑맞곤 못살아'와 '복면 달호'도 그렇다. 최근작인 '바르게 살자'(2007년)도 마찬가지.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사이토 히로시의 원작을 장진 감독이 각색했다. 이 작품은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이 잇따라 터지는 은행강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의 은행강도 훈련을 벌이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뤘다. 장진 영화 특유의 허를 찌르는 황당한 웃음과 진지함이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장진의 '기막힌 사내들'처럼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쫓아가게 만드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