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재영 16

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이 만든 느와르 '거룩한 계보'(2006년)는 참으로 어정쩡한 영화다. 내용은 폭력조직을 위해 목숨바쳐 일해온 주인공 동치성(정재영)이 자신을 버린 조직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장진의 페르소나인 정재영을 비롯해 정준호, 민지환, 이한위, 신구, 윤유선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주먹질이 오가고 피가 피를 부르는 대결 속에 허망하게 쓰러져가는 인간 군상의 비극적인 모습은 영락없는 느와르다. 그렇지만 장진 특유의 개그식 대사와 SF 만화같은 황당한 설정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있다. 장진은 작정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이를 그는 "어눌한 타협"이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의문이다. 판타지도 아니요, 코미디도 아니고 100% 느와르도 아닌 이..

나의 결혼원정기

황병국 감독의 데뷔작 '나의 결혼원정기'(2005년)를 처음 본 곳은 3월에 출장차 탔던 유럽행 비행기였다. 몇 가지 영화를 보기 위해 좌석에 연결된 AV시스템의 채널을 돌리던 중 이 작품을 하길래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 생각없이 봤지만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못한 시골 노총각들이 할 수 없이 머나먼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신부를 찾는 얘기를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렸다. 농촌 총각들이 여자들의 결혼 기피상대가 돼버려 우즈벡, 필리핀, 베트남 등으로 결혼원정을 떠나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을 제대로 짚은 메시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작품의 리얼리티, 즉 현실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배우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고, 실화를 토대로 감행한 ..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은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가장 히트한 영화다.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오지 산골에서 맞닥뜨린 국군과 인민군이 순박한 산골 사람들 덕분에 동화돼 친구처럼 지낸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와 묵직한 반전 메시지를 판타지풍 영상에 실어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전달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 특히 강원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며 웃음을 선사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도 훌륭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화질은 그저 그렇다. 텔레시네와 색보정을 미국 전문업체에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색감이 전체적으로 약간 뜨는 ..

아는 여자 (SE)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 DVD 타이틀이 출시됐다. 여자들이 즐겨 쓸 듯한 수첩 모양을 닮은 패키지가 제법 예쁘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영상은 무난한 편. 세방현상소에서 촬영 필름을 디지털 스캔한 뒤 색보정을 거치는 DI(디지털 인터미디어트) 작업을 거쳤다고 해서 화질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일단 플리커링 외에 특별한 잡티는 없지만 색상이 극장에서 봤던 것보다 탁하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평범한 수준. 요란한 소리가 울릴 만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서라운드 효과도 많지 않다. 2장으로 구성된 만큼 부록이 많다. 장진 감독, 정재영, 이나영의 재미있는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장진 감독이 진행하는 정재영과 이나영..

실미도

1971년 실제 일어났던 실미도 684 특수부대 사건을 영화로 옮긴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3장짜리 DVD로 출시. 극장 개봉 당시 기대를 안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작품. 적당한 긴장감과 눈물, 유머가 뒤섞여 관객들의 심금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강우석은 여우다. 한국적인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를 영리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본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낫다는 생각.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답게 DVD 또한 풍성하다. 자료 화보집,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내용, 영화 제작 과정 등 각종 부록과 함께 영화를 수록. 그러나 정작 영화 본편의 화질은 실망스럽다. 초반 화면은 지글거리고 색감은 탁하며 암부 디테일이 떨어진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