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CD 20

이네사 갈란테 'Debut'

이네사 갈란테(Inesse Galante)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1990년대 말, 자주 가던 레코드점에서 새로 나온 클래식 신보를 모아놓은 곳에 그의 앨범 '데뷔'(Debut)가 꽂혀 있었다. 레이블도 생소한 오스트리아의 챔피언이라는 레코드사에서 나온 수입 음반이었다. 이 음반에 눈이 간 이유는 비닐 커버에 붙여놓은 스티커 때문이었다. "감동적인 목소리" 어쩌고 저쩌고 하는 늘 듣는 수식어와 함께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처음 소개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16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는 당시 국내에서 그리 낯익은 이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훗날 작곡가가 카치니가 아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Vladimir Vavilov)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워낙 곡 스타일..

안녕이란 두 글자는 너무 짧죠

매달 글을 쓰는 잡지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좀 다른 주제였다. '비터 로맨스'. 말 그대로 쓰디쓴 사랑을 다룬 영화를 소개하는 기획이었다.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정했다. 원고를 맡고 예전에 봤던 영화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남들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얘기하지만 결말 부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런 장면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던 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스스럼없이 얘기를 하던 여인이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자는 슬그머니 여인의 손을 놓는다. 그리고 화난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며 슬픈 표정도 아닌 무덤덤한 얼굴로 돌아선다. 그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장희가 만든 '안녕이란 두 글자는 너무..

상드로제

프랑스 아트록 그룹 상드로제(Sandrose)의 동명 타이틀 음반은 가장 아끼는 LP다. 1972년 출반 된 이 음반은 몇 장 찍어내지 않아 희귀 음반이 돼버렸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 시완레코드가 라이선스 LP로 소량 찍어낸 적이 있으나 소장한 LP는 라이센스판이 아닌 프랑스 Musea의 원판이다. 이 음반은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여기 담긴 마음 때문에 더없이 소중하다. 몇 년 전 '까당스'라는 음악 모임을 함께 만든 지인이 공교롭게 내 생일에 결혼을 했다. 축하해 주러 결혼식장을 찾은 나는 그에게서 뜻밖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 바로 이 LP다. 워낙 뜻밖이고 귀한 물건이어서 선뜻 받지도 못하고 할 말을 잃었는데, 그는 더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LP를 건넸다. 그가 이 음반을 어떻게 구했는지 사..

킨키 키즈 '硝子の少年'

1997년 일본 출장을 처음 갔다. 볼 일을 보고 틈이 나서 도쿄 시부야에 있는 HMV에 들렸다. 당시 국내에 일본 음반 판매가 금지된 시절이라 평소 듣고 싶던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였다. 우선 엑스재팬의 음반을 왕창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잘 나가는 싱글 음반만 모아놓은 곳을 보게 됐다. 거기서 맨 위에 꽂혀 있던 CD를 집어 들었는데 그게 바로 킨키 키즈(Kinki Kids)의 '硝子の少年'(유리 소년)였다. 그때는 도대체 이들이 누구이고 그 싱글 CD에 어떤 노래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샀다. 다행히 들어보니 리듬이 흥겹고 들을 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가 이들의 최고 히트곡으로, 일본에서만 싱글 판매 약 180만 장 기록을 세운 곡이었다. 킨키 키즈는 1979년생인 도모토 코..

서든 올 스타즈 'Tsunami'

일본 그룹 서든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노래 '츠나미'. 우리에게는 해일이라는 뜻의 쓰나미로 유명하다. 일본 드라마 '모토카레'(옛애인)에 쓰인 노래다. 얼마전 우리 나라에서 V.one(강현수)이 리메이크한 '그런가봐요'의 원곡. 1996년 일본 출장을 갔다가 PC통신 천리안 때문에 알게된 친구를 도쿄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현지에서 유명한 광고기획사 PD로 몇 년째 일하고 있었다. 고국에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갠 그는 마침 도쿄에 머물던 지인을 시부야 한복판으로 불러냈다. 불쑥 나타난 지인은 뜻밖에도 '그것은 인생'을 부른 가수 최혜영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내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된 최혜영은 더 놀랐다. 그렇지만 낯선 땅에서 만난 동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