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CD 20

샤를르 아즈나부르 'Isabelle'

1980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영화잡지를 뒤적이다가 프랑스 가수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가 1965년 발표한 '이자벨'이라는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루머 비슷한 얘기였는데, 그 바람에 국내에서도 금지곡이 됐다는 글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동네 음반점으로 달려갔다. 당시 음반점들은 돈 받고 LP에 들어있는 노래들을 이것저것 테이프에 복사해 줬다. '이자벨'을 찾았더니 주인아저씨는 백판을 한 장 들고 와 녹음해줬다. 금지곡이니 백판 외에 들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노래일까, 기대 반 호기심반으로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들었다. 약 3분여 노래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안 ..

엄인호&박보밴드 '왜 불러'

엄인호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블루스 음악인. 박보는 좀 특이하다. 195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쉰이 넘었다. 데뷔 당시 이름은 히로세 유고. 일본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아버지는 한국인.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박보로 개명하고 우리 노래를 즐겨 부른다. 국내에는 '도쿄 비빔밥' 밴드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부른 '왜 불러'는 참 맛깔스럽다. 사자후를 토하던 젊은 날의 송창식을 연상케 한다. 비록 발음은 약간 어색하지만 송창식 다음으로 이 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린 가수가 아닐까 싶다. 신촌블루스의 '앤솔로지'와 엄인호&박보밴드의 '레인보우 브릿지' 합본 CD에 수록됐다.

손지연 '실화'

가수 손지연의 목소리는 단아하다. 마치 아마추어가 노래하듯 꾸밈이나 기교 없이 담백하게 노래한다. 그래서 더 호소력 있게 들린다. 그의 데뷔 앨범 가운데 가장 와닿는 곡은 자작곡에 기타까지 연주한 '실화'. 편안하고 단정한 현악 반주 위에 실린 노래가 더없이 자분자분 감정을 밟는다. 특히 가사를 눈으로 따라가며 들어보면 그의 편지나 일기장을 슬쩍 들쳐보는 것 같다. '호떡'같은 노래도 재미있고 좋은데, 내지르는 고음에서 약간 음이 흔들린다. 어찌 보면 그것도 그의 매력일 듯. 좋은 노래이고 좋은 가수이지만 방송을 얼마나 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많이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영은 'Remake'

몇 년 전 개인적 음악모임 '까당스'에 서영은을 초청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20명 남짓한 청중들 앞에서 '그 사람의 결혼식'을 열창했다. 음반으로 듣던 곡을 직접 들으니 그 맛이 또 달랐다. 참으로 절절했다. 노래 정말 잘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뒤로 활동이 뜸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새 음반을 냈다. 'Remake'. 그가 좋아하는 다른 가수들 노래를 다시 부른 음반이다. '마법의 성' '희나리' '잊혀진 계절' '애모'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그중 가장 좋은 노래가 바로 '너에게로 또다시'다. 하이키로 치솟는 목소리 덕에 변진섭보다 곡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반을 듣노라니, 옛날 까당스 모임 생각이 난다. 소규모 청중들을 마다않고 기꺼이 달려와 열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