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9/11 9

007 카지노로얄(4K 블루레이)

제임스 본드가 달라졌다. 21번째 007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Casino Royal, 2006년)에 한 마리 들짐승같은 제임스 본드가 등장한다. 말쑥한 옷차림으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바람둥이 기질, 어떤 싸움에서도 다치는 일 없이 적들을 모두 제압하는 슈퍼맨같은 007은 사라졌다. 또 기존 시리즈의 전매특허였던 황당무계한 비밀무기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바람에 비밀무기를 만들어주던 Q도 사라졌다. 아울러 007의 트레이드마크인 마티니도 마시지 않는다. 플레이보이 겸 슈퍼맨 같은 첩보원과 비밀무기가 빠진 007 시리즈는 온전한 액션물로만 존재한다. 여기 맞춰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은 더 할 수 없이 거칠고 비정하며 폭력적이다. 티모시 달튼을 제외하고 숀 코네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블루레이)

알란 파커 감독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 1978년)는 1970년대판 '빠삐용'이다. 터키에서 마약 2킬로그램을 몸에 숨겨 비행기를 타려다가 체포된 미국 청년이 3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 역시 '빠삐용'과 마찬가지로 놀랍게도 실화다. 윌리엄 헤이즈가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을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빠삐용'과 달리 논란을 불렀다. 빠삐용이 사실을 토대로 극적 재미를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면 이 작품은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제작진은 실제와 달리 터키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비극적이며 잔혹하게 묘사했고 탈출 장면 또한 사실과 다르게 극적으로 만들었다. 그 바람에 터키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반대가 ..

죄 많은 소녀(블루레이)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 '죄 많은 소녀'(2017년)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돼 뉴커런츠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은 영화다. 이 영화는 죄의식과 책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여고생이 같은 반 친구의 자살을 둘러싸고 책임이 있다는 지목을 받으며 시달린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면서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죽은 아이의 엄마까지 여고생을 찾아와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후 벌어지는 사태들은 사람들이 죄의식 앞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만들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소중한 친구를 잃고 나서 자책의 드라마를 쓰고 싶어 만든 것이 이 작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주연을 맡은 전여빈의 연기다. 그는 친구의 자살 ..

셰인(블루레이)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셰인'(Shane, 1953년)을 흔히 서부극의 고전으로 꼽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스파게티 웨스턴과 다른 미국 정통 서부극이 강조하는 개척정신과 카우보이들의 불굴의 투지, 정의 수호 같은 미국식 정의가 잘 포장돼 있다. 그런 류의 미국 정통 서부극 주인공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헨리 폰다처럼 강인해 보이는 턱과 떡 벌어진 어깨 등 강건한 외모의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곱상한 외모의 앨런 래드가 주인공이다. 앨런 래드는 잘 생겼지만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처럼 큰 키와 넓은 어깨의 배우가 아니다. 작고 가냘파 보이지만 번개처럼 빠른 속사 권총과 침묵으로 존 웨인과 게리 쿠퍼 못지않은 무게감을 줬다. 마치 원빈이 '아저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