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포물 36

크립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크립'(Creep, 2006년)은 지하철을 무대로 다룬 공포물이다. 내용은 무려 150년 가까이 된 영국의 미로같은 지하철에 갇힌 여인이 정체모를 괴한에게 쫓기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지하철을 이용해 공포감을 자극한 시도는 좋았으나 이야기의 생략이 심한게 흠이다. 중반 이후 여주인공의 뒤를 쫓는 살인마에 대한 설명과 살인 동기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감독은 DVD에 실린 음성해설을 통해 "너무 많은 설명은 지겹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무작정 비명을 지르고 무기를 휘두르며 달릴 뿐이다. 놀이공원내 귀신의 집처럼 깜짝놀라게 만들기는 하지만 정작 모골이 송연한 공포는..

아파트

'폰'으로 주목을 받은 안병기 감독도 이제 소재가 다떨어진 것 같다. 심지어 장면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와 공포물에 대한 영상감각 마저 떨어진게 아닌가 싶다. 그가 만든 '아파트'(2006년)는 만화가 강풀의 인기 원작 만화를 각색했는데도 불구하고 원작의 재미와 참신함을 제대로 못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중산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장면들도 여러 부분이 다른 공포물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바람에 여지없이 귀신이 등장하고 보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의미없이 요란한 음향이 추가됐는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혀 무섭지 않다. 워낙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사회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지간한 자극에 둔감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 부족한 스토리나 이해할 수 없..

오멘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오멘'(Omen, 1976년)과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오컬트 영화다. 두 작품 모두 성경에 기반을 둔 으스스한 악마 이야기로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엑소시스트'가 선의 승리로 끝나는 반면 '오멘'은 선의 패배를 다뤄 더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오멘은 그다지 무서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더욱 섬뜩한 느낌을 줬는데, 비결은 바로 누구나 악마라고 생각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적 그리스도로 선정한 파격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 작품은 무려 4편의 후속시리즈가 만들어질만큼 인기를 끌었으나 뒤로 갈 수록 이야기가 황당하고 만화같아진다. 올해 등장한 리메이크작은 보지 않았으나 원작의 아우라를 얼마나 흉내냈는지 궁금하다. 오멘 역시 ..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요즘 할리우드의 공포물은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여름 더위를 쫓는 납량물이었으나 요즘은 액션물이나 스릴러처럼 긴장감에 초점을 맞춘다. 마커스 니스펠(Marcus Nispel)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The Texas Chainsaw Massacre, 2003년)도 마찬가지. 1973년 제작된 토브 후퍼(Tobe Hooper)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긴장감으로 보는 이를 옥죈다. 청년 5명이 외딴 마을에서 살인마에게 차례로 희생되는 내용은 원작과 비슷하다. 다만 결말과 일부 희생자 묘사 등이 약간 다르다. 이 작품은 실화로 많이 알려졌으나 내용 전부가 실화는 아니고 에드워드 게인(Edward Gein)과 안드레아 예이츠 사건 등 실제 연쇄살인..

엑소시스트 (The Version You've Never Seen)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 감독의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년)는 공포 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액션에 비중을 둔 요즘 공포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상징, 징조 등으로 무서움을 자극하는 정통 공포물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따라서 보는 내내 으스스한 분위기로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나 이 작품이 무서운 것은 실화에 바탕을 뒀기 때문. 원작자인 윌리엄 블래티는 1940년대 후반 위싱턴 D.C 근교의 마운트 래니어 마을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14세 소년을 구해낸 신부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1971년 소설로 발표했다. 그는 소설이 인기를 끌자 제작자로 나서 프리드킨 감독을 지목해 영화로 만들었다. 워낙 충격적인 소재인 만큼 영화는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