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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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힌지드(블루레이)

데릭 보트 감독의 '언힌지드'(Unhinged, 2020년)는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실감 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바쁜 출근길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가 끔찍한 보복 운전을 당하는 여성 운전자 얘기다. 그런데 보복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저 길을 막아서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운전자의 휴대폰을 빼앗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를 지나친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흠잡기 힘든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잔혹 보복 범죄를 심심찮게 보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만난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미래의 미라이(블루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未来のミライ, 2018년)는 첫 장면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감 샷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이 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수채화처럼 아련한 느낌을 주는 색감의 그림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사실적으로 그린 배경과 달리 둥글둥글하고 간략하게 선처리를 한 전형적인 만화풍 그림체다. 이 점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사실적인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내용은 4세 소년이 갓난아기인 여동생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뤘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아기에 집중되면서 철부지..

파이널 판타지 XV: 킹스 글레이브(4K 블루레이)

노즈에 타케시 감독의 '파이널 판타지 XV: 킹스 글레이브'(Kingsglaive: Final Fantasy XV, 2016년)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순전히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제작한 이 작품은 모든 캐릭터들이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다. 섬세한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얼굴에 난 점과 주름, 바람에 하늘거리는 머리카락까지 아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쯤 되면 목소리를 제외한 연기는 굳이 배우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내용은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를 토대로 했다. 마법 왕국인 루시스의 중요한 보물인 크리스털을 빼앗으려는 니플하임 제국에 맞서는 사람들 이야기다. 여기서 크리스털은 사..

가타카(4K 블루레이)

앤드류 니콜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데뷔작 '가타카'(Gattaca, 1997년)의 매력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다룬 미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우성과 열성 유전자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 열성 인자를 갖고 태어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다. 그저 건물 청소나 하고 허드렛일만 하며 연명할 뿐이다. 정작 사회를 이끌어 갈 중요한 일은 우성 인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사회에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사회에도 편법은 있다. 유전자를 사고팔고 조작해서 열성 인간을 우성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완벽을 꿈꾸는 사회에 이런 비즈니스는 치명적 오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 치명적 오점에 희망을 걸고 토성..

독전(4K 블루레이)

배우 김주혁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해영 감독의 '독전'(2018년)은 2013년 두기봉 감독이 만든 홍콩 영화 '마약전쟁'이 원작이다. 하지만 경찰이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마약상과 손잡는 기본 설정만 같을 뿐 내용 전개는 다르다. 이 작품은 이름과 얼굴 등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아 유령으로 통하는 마약 밀매 조직의 두목을 쫓는 경찰(조진웅)의 얘기다. '이선생'으로만 알려진 두목을 잡기 위해 경찰은 밀매 조직의 말단 중개상(류준열)과 손잡고 복잡한 위장 수사를 펼친다. 문제는 마약 밀매 조직조차 이선생의 정체를 몰라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중국의 거대 마약상(김주혁)까지 개입하면서 잔인하고 복잡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은 결정적으로 '중개상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 위장 수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