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체 글 2635

억새의 섬, 제주

10월 초 중순이면 제주는 억새가 강물처럼 바람에 일렁인다. 오름 등성과 산간 길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 억새들은 몸뚱이를 누이며 바람을 읽는다. 흔히 제주 하면 돌, 바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고 부르지만 가을에는 단연 억새의 섬이다. 억새가 물결을 이루는 10월에 제주를 찾으면 새삼 봄, 여름, 겨울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연 제주의 새로운 발견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탓인지 제주는 온통 여행객들로 붐볐다. 김포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렌터카를 빌리는 사람들이 셔틀을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가득 모여 있었다. 그렇게 셔틀을 빌려 타고 제주 중턱의 포도호텔까지 가는 길에도 자동차들이..

여행 2020.10.24

21 점프 스트리트(4K 블루레이)

필 로드(Phil Lord)와 크리스 밀러(Christopher Miller)가 공동 감독한 '21 점프 스트리트'(21 Jump Street, 2012년)는 1980년대에 인기를 끈 미국 TV 시리즈를 다시 만든 영화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시즌 동안 방영된 이 시리즈는 범죄 수사를 위해 미국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위장해 잠입한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유명 배우들이 젊은 시절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니 뎁(Johnny Depp)이다. 그는 신인 시절 이 시리즈에 주인공인 잠입 경찰로 출연했다. 조니 뎁 뿐만 아니라 브래드 피트(Brad Pitt) 등도 잠깐 출연하는 등 여러 배우들이 이 시리즈를 무명 시절에 거쳐갔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는 추억어린 작품이..

LG전자의 OLED TV 번인 문제 해결 과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s) TV의 화질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패널 뒤에 따로 불을 밝히는 백라이트를 설치해 화면을 보여주는 액정(LCD, Liquid Crystal Display) TV와 달리 패널 전체가 스스로 빛을 내는 반도체로 구성돼 있다 보니 색감이나 화면 밝기, 선명도 등이 LCD TV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특히 압권은 딥 블랙의 표현이다. LCD는 아무래도 백라이트 때문에 검은색이 진회색처럼 뜰 수밖에 없는데 OLED는 검은색 부분에 소자를 끄면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검은색, 즉 칠흑 같은 검은색을 표현할 수 있다. 검은색의 표현은 16 대 9 화면비, 그중에서도 2.35 대 1 화면비의 영화를 볼 때 바로 알..

메모장 2020.10.18

남과 여(블루레이)

오래된 영화팬들은 남과 여라면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1966년에 만든 걸작 '남과 여'(A Man And A Woman)를 우선 떠올린다. 무려 60여 년 전 작품인데 지금 다시 봐도 아름다운 영상과 아련한 음악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작이다. 이윤기 감독도 를루슈 감독의 작품을 의식하고 '남과 여'(2015년)를 만들지 않았을까.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점은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기본적인 설정이 다르다. 클로드 를루슈와 이윤기의 '남과 여' 를루슈 감독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남녀이지만 홀아비와 미망인이어서 심리적 제약은 없다. 반면 이윤기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각 유부남 유부녀여서 물리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심리적 제약을 갖고 있다..

300(4K 블루레이)

황갈색 근육이 물결친다. 난분분, 그 사이로 꽃잎처럼 붉은 피가 어지럽게 흩날린다. 잭 스나이더(Zack Snyder) 감독의 '300'(2006년)은 테르모필레 전투를 처절하고 아름다운 영상시로 바꿔놓았다.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BC 480년 그리스를 침공한 수 만명의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싸운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 이야기다. '씬시티'에서 보여줬듯이 프랭크 밀러의 세계는 어둡고 거칠며 우울하다. 불의와 악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어둠의 세계에서 섬광처럼 번뜩이는 잔혹한 폭력은 유일한 구원이다. '300'도 예외가 아니다. 조국을 위해 창을 든 스파르타인들의 싸움은 잔혹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승리만이 유일한 살 길이기에, 그들의 싸움은 더 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