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곡성

산자락에 자리잡은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잇따라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이 벌어진 장소들은 바닥, 벽, 천장 할 것 없이 온통 피가 튀어 피칠갑이고, 난자당한 시체들 속에 온 몸이 부스럼으로 덮힌 용의자가 눈을 까뒤집은 채 넋이 나가 있다. 이쯤되면 시작부터 섬뜩한 기운이 보는 이를 휘감아 으스스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다. 이때부터 나홍진 감독과 관객들의 복잡한 두뇌 게임이 시작된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년)은 스릴러와 한국판 오컬트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복잡한 심리 영화다. 중심 축은 연쇄 살인범을 쫓는 경찰들과 용의자간에 숨바꼭질하듯 벌어지는 추격전이다. 하지만 데뷔작인 '추격자'나 전작인 '황해'처럼 숨막히는 액션이 가미된 추격전은 아니다. 물론 산 속을 누비는 추격장면에서..

영화 2016.05.14

클로버필드 10번지

댄 트라첸버그 감독의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 2016년)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 올리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어찌나 이야기가 숨 막히게 진행되는 지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남자 친구와 싸우고 집을 뛰쳐 나간 여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한 뒤 깨어나 보니 알 수 없는 밀실에 갇혀 있게 된다. 그를 가둔 상대는 세상이 끔찍한 상황을 맞았다며 방공호 같은 지하 대피소가 최고의 피난처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의 말은 사실일까. 도대체 바깥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때부터 주인공은 한 공간에 있는 존재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치르게 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안팎이 모두 위험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자니 무서운..

영화 2016.04.10

데드풀

데드풀은 마블 코믹스 히어로 가운데 독특한 캐릭터다. 암 치료를 받다가 부작용으로 특수 능력을 얻으며 온 몸이 흉칙하게 변한 주인공이 마스크를 쓰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내용이다. 그가 얻은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작용이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고 손을 잘라 내도 다시 생겨난다. 어찌보면 직접 인체 실험을 하다가 특수 능력을 얻게 된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와 급속한 신체 회복 능력을 지닌 울버린하고도 닮았다. 이를 토대로 만든 팀 밀러 감독의 '데드풀'(Deadpool, 2016년)은 참으로 유쾌한 영화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과거 오우삼의 홍콩 느와르물을 연상케 하는 액션씬이다. 여러 명의 악당을 상대하는 장면을 정지시킨 채 360도 회전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느린 슬로모션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꼭..

영화 2016.03.12

빅 쇼트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 쇼트'(The Big Short, 2015년)는 독특한 영화다.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다. '4명의 괴짜 천재들이 월가를 물먹였다'는 식의 홍보문구를 보면 '스팅'이나 '이탈리안잡' '오션스 일레븐' 식의 머리좋은 사기꾼들 얘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다루고 있다.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발생했는데 리먼 사태의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주로 다룬 뉴센트리파이낸셜의 파산이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3가지가 있는데 신용이 좋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프라임, 중간단계인 ..

영화 2016.02.09

사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한(恨)과 정(情)이다.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진 것이 한이라면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따뜻한 인간애가 버무려진 것이 곧 정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이기도 한 한과 정은 그의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 관계 속에 곧잘 표출된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 일행이 빚는 갈등과 '님은 먼 곳에'에서 시어머니 구박 속에 버티던 며느리가 남남 같은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 것도 기실 따져 보면 한과 정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내놓은 '사도'(2015년)도 마찬가지다. 비정한 아비가 된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을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끈끈하게 그려낸..

영화 201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