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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블루레이)

울프팩 2019. 5. 15. 21:53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밤비'(Bambi, 1942년)는 디즈니 입장에서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난리를 치르던 전쟁통의 한 복판에서 태어났다.

 

시장의 절반이나 마찬가지였던 유럽은 나치의 침공으로 전화에 휩싸여 극장 개봉을 할 수 없었고, 미국 또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애니메이션을 평화롭게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할리우드에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애니메이터 등 수많은 영화 종사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전쟁과 파업이라는 외부 환경변수로 이중고를 겪던 디즈니는 결국 재정 압박에 봉착하면서 '밤비'를 만들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이에 디즈니는 팔을 걷어붙이고 전미은행장에게 작품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완성된 작품은 1942년 8월 나치 독일의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런던에서 개봉했다.

당연히 흥행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디즈니는 개봉 당시에 이 작품으로 큰 손해를 봤지만 훗날 전쟁이 끝나고 수 차례 재상영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흥행 비결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상징성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상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펠릭스 잘텐이 쓴 동물소설 '숲 속의 노루 밤비'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왕자의 자격으로 태어난 어린 사슴이 어머니를 잃고 엄혹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성장해 제 몫을 다하는 이야기다.

당시 암울한 전쟁 속에서 희망을 갖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원작 소설은 적자생존의 동물세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성인물이었다.

그만큼 내용이 잔혹하고 사실적이었으나 디즈니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희망과 온정이 있는 가족 스토리로 바꿔 놓았다.

 

디즈니의 생각대로 어른들은 이 작품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한편으로는 전쟁통에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 아이들은 디즈니의 생각과 달리 이 작품을 엄청 무서워했다.

 

아이들은 밤비가 어미 사슴을 잃고 외톨이가 되는 장면을 보며 엄마를 잃는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디즈니는 뜻밖의 상황을 보고 결코 사실적인 묘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후 작품에서는 아이들이 봤을 때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을 다시는 그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디즈니 작품의 방향을 결정한 셈이다.

더불어 디즈니의 뛰어난 작화가가 그린 풍경화 같은 그림과 원근법을 강조한 영상은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을 작게 그리는 2차원적 원근법이 아니라 멀티 플레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카메라 초점을 어디 맞추느냐에 따라 나머지 부분이 흐려지는 3차원적 원근법을 구사했다.

덕분에 사슴이 숲 속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면 한 없이 넓고 깊은 숲의 깊이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해 이런 효과를 손쉽게 낼 수 있지만 무려 70여 년 전 컴퓨터가 쓰이기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술력이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밤비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디즈니는 이 작품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해 훗날 사자의 모험 이야기로 바꾼 '라이온 킹'을 만들었다.

어미를 잃고 추방된 아기 사자가 당당히 왕이 돼서 복귀하는 '라이온 킹'을 보면 '밤비'의 구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동물만 사슴에서 사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영화사적 가치를 감안하면 이 작품이 새삼 달리 보인다.

 

1080p 풀 HD의 4 대 3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70여 년 전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화질 복원이 잘 됐다.

영상은 잡티 하나없이 깨끗하고 윤곽선이 선명하며 색감도 손에 묻어날 듯 뚜렷하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채널 분리가 확실해 제대로 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 채널의 활용도도 높아서 소리가 공간 전체를 감싼다.

 

부록으로 삭제 장면, 제작과정, 노래와 밑그림 소개, 동물 묘사와 목소리 연기, 작화 및 멀티 플레인 촬영 기법 설명, 음악과 원작 소개, 단편 애니메이션 등 풍성하게 들어 있다.

모든 부록에 한글 자막이 수록돼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원작은 1928년 오스트리아 작가 펠릭스 잘텐이 쓴 동물소설' 숲 속의 노루 밤비'다. 디즈니는 원작의 동물인 노루가 미국에 없어서 사슴으로 바꿨다.
디즈니는 원작 소설이 애들이 보기에 너무 우울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해 아이들에 맞춰 각색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손대지 않았다.
당시 밤비 목소리를 연기한 도널드 더너건은 훗날 해병대 장교가 됐는데 사람들이 놀릴까봐 밤비 목소리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전역할때까지 숨겼다.
디즈니는 이 작품의 원근감을 살리기 위해 멀티플레인 기법을 개발했다. 앞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사물들을 거리별로 각 유리판에 그린 뒤 이를 포개서 카메라로 촬영하는 기법이다. 그 바람에 원근감이 실제처럼 살아났다.
토끼 덤퍼의 목소리는 캐스팅 당시 4세였던 피터 벤이 아이들 목소리 그대로 연기했다. 꼬마여서 긴 대사를 외우지 못해 옆에서 계속 대사를 불러 줬다.
디즈니는 동물의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백스터주립공원에서 새끼 사슴을 데려와 움직이는 것을 찍어놓고 그대로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동물학자와 해부학 교수 등을 초빙해 동물 해부학 강의도 들었다. 특히 아기의 표정을 관찰해 밤비에 반영한 덕분에 표정 연기가 가능한 동물 캐릭터를 만들었다.
월트 디즈니는 사진사들을 메인주의 숲으로 보내 숲 속 풍경과 생물 사진을 수백장 찍어 오게 한 뒤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뛰어난 작화 덕분에 높이 평가받는 이 작품의 풍경은 중국계 미국인 타이러스 웡이 그렸다. 그는 2016년 106세로 사망했다.

 
 
밤비 DE : 블루레이
 
밤비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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