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은 중범죄자 리스트를 따로 관리한다.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처럼 주로 범죄계 거물들이 오른다.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은 죽기 전에 이 리스트에서 1위였다.
두 번째는 미국 갱단 두목 제임스 화이트 벌저였다.
벌저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어느 정도 나이든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범죄 거물로, 과거 알 카포네 만큼이나 유명한 존재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인 벌저는 1970,80년대 윈터힐이라는 갱단을 만들어 보스턴에서 밤의 제왕처럼 군림했다.
각종 청부 폭력은 물론이고 마약 밀매, 도박, 사채업 등으로 돈을 번 그는 19명을 죽인 혐의로 수배 대상에 올랐다.
그런데도 그는 무려 16년이나 도망 다녔다.
그것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산 속으로 숨어 다닌 것이 아니라 버젓이 대도시를 활보하며 단속을 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부, 그것도 FBI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법당국이 덥칠만 하면 교묘히 빠져 나갔기 때문에 누군가 벌저에게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란 의심이다.
실제로 벌저는 FBI를 이용했다.
이 점이 벌저의 특이사항이다.
그는 자신이 FBI의 끄나풀, 즉 정보원 노릇을 하면서 거꾸로 FBI의 정보를 빼내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 점에서 벌저와 FBI는 공생 관계였다.
부패한 FBI 수사관 존 코널리가 협조한 덕분이었다.
코널리는 보스턴을 주름잡던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벌저와 손을 잡았다.
코널리는 벌저에게 정보를 받아서 마피아 조직을 급습하고, 벌저에게 마피아들이 갖고 있던 각종 이권 사업을 넘겨 줬다.
마피아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벌저는 코널리의 정보원 노릇을 하며 자연스럽게 세력을 확대했다.
이렇게 벌저와 코널리는 서로를 챙겨주며 이익을 나누고 법망도 피했다.
그 바람에 벌저는 무려 16년간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일반 사람들처럼 생활하며 막후에서는 범죄조직을 지휘했다.
벌저를 추적한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FBI는 사실상 벌저를 일부러 방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정보원 보호가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와 커넥션이 드러나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보호본능이 앞섰기 때문이다.
벌저가 잡힌 것은 코널리가 은퇴하고 FBI에 새로운 세대들이 들어가며 물갈이 된 뒤였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동물을 좋아하는 노인처럼 위장하고 숨어 살던 벌저는 결국 FBI의 급습을 받아 체포됐다.
현재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스콧 쿠퍼 감독의 '블랙 매스'(Black Mass, 2015년)는 악명높은 범죄자 벌저를 추적한 실화를 다룬 영화다.
오랜 세월 벌저의 이야기를 취재한 보스턴글로브의 기자 제랄드 오닐과 딕 레어가 쓴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벌저를 연기한 조니 뎁이다.
그는 얼굴에 보철물을 끼우고 분장해 벌저와 흡사한 외모를 만들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냉혹하면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이중성을 지닌 벌저의 모습을 그럴듯 하게 연기했다.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것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에 깊숙히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조니 뎁의 연기 덕분이다.
특히 영화가 섬뜩한 것은 주요 장면의 대부분을 실제 사건 사고 현장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쿠퍼 감독은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벌저가 사람을 죽이고 암매장한 실제 장소를 찾아가 영화를 촬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음울하고 불길한 기운이 영상에 감돈다.
워낙 드라마틱한 이야기라서 요란한 액션이 없어도 충분히 빠져들만한 범죄물이다.
이 작품이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마피아 영화와 달리 음침하게 느껴지는 것은 구린내가 물씬 풍기는 FBI와 부패 커넥션을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천하의 FBI가 오랜 세월 음험한 범죄자와 한 통속이 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1080p 풀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오래된 영화처럼 아련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은 윤곽선이 뚜렷하고 색감이 좋은 편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활용도가 높아서 서라운드 효과가 잘 살아 있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조니 뎁 연기, 화이트 벌저 사건 설명 등의 자료가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벌저는 유명한 갱단의 두목이 됐지만 동생은 이름있는 정치인이 됐다.
FBI 수사관이었던 존 코널리는 은퇴 후에도 FBI와 가깝게 지내며 정보를 빼내 벌저에게 제공했다.
벌저가 희생자들을 다리 밑에 암매장해 '벌저의 공동묘지'로 불린 실제 장소에서 암매장 장면을 촬영.
벌저는 꽤 오랜 기간 테레사 스탠리와 캐서린 그렉이라는 두 명의 여성을 사귀었으나 두 여성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벌저를 연기한 조니 뎁. 이마에 보철물을 붙이고 특수 분장을 했다. 촬영은 타카야나기 마사노부가 맡았다. 그는 '스포트라이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을 찍었다.
원래 가이 피어스가 벌저 역으로 섭외됐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했다.
마이애미 비치로 나온 곳은 보스턴에서 20~30분 거리인 매사추세츠주 리비어의 해안이다.
마고 로비도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촬영 일정이 맞지 않아 합류하지 못했다.
조니 뎁은 출연료가 맞지 않아 중간에 빠졌다가 나중에 다시 합류했다.
벌저는 피해자의 신원을 경찰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치아를 모두 뽑았다. 벌저의 범죄 행각은 영화 '디파티드'의 모태가 됐다.
벌저는 2011년 81세 나이에 체포됐는데, 당시 숨어 살던 아파트 곳곳에 비밀장소를 만들어 83만달러의 현금과 엄청난 총기들을 숨겨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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