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신세계

울프팩 2013. 2. 23. 16:47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들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내용은 홍콩영화 '무간도'처럼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로 파고 든 경찰이 범죄조직을 와해시키는 이야기.
설정부터 그러니, 정체가 드러날까 봐 가슴을 조이는 경찰만큼이나 보는 사람도 숨이 가쁘다.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선 최고지만, 칼 끝 같은 긴장 속에 한 치의 여유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각종 의심과 암투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느라 뻣뻣하게 굳어있는 등장인물들의 스트레스가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만큼 일말의 휴식같은 러브라인이나 웃음 코드의 부재가 아쉽다.
대신 그 자리를 권력을 노린 조폭들의 쌍욕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경찰 스파이의 신경질이 채우고 있다.

사명감에 목숨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법 스릴 넘치게 풀어낸 이야기는 재미있고 좋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빠져들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바로 그럴 법 한 개연성, 즉 리얼리티의 부족이다.
우선 영화 속 범죄조직이 경찰 서너 명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스파이를 심어야 할 만큼 대단한 조직인 지 와닿지 않는다.

영화는 해당 조직이 얼마나 거대 권력이며 국가나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인지 설명이 전혀 없다.
오랜 역사 속에 거대 권력으로 자라나 정부에서도 쉽게 뿌리뽑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마피아나 중국의 삼합회같은 조직이라면 모르지만, 영화처럼 단순 폭력조직의 연합체라면 굳이 경찰 스파이라는 허황된 드라마를 만들 이유는 없다.

줄거리는 다르지만 조직에 침투한 경찰 등 일부 설정이나 등장인물이 겪는 갈등이 자꾸 '무간도'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점도 약점이다.
그러면서 경찰과 범죄조직에 서로 스파이를 심어야 하는 명분이 뚜렷한 '무간도'보다는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달콤한 인생' 이후 악역을 딱 부러지게 소화한 황정민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다만 이정재는 비중있는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한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불어 인물들의 표정을 정확히 짚어낸 조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카메라 움직임은 세련됐다.
특히 앙각으로 찍은 샷 중에 등장인물들의 어깨 위로 곱게 떨어지는 조명은 빛의 밝기나 세기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인물들의 얼굴에 적당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콘트라스트를 살린 것이 아주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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