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부뉴엘의 단편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6년)는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약 16분 분량의 흑백 무성영화인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태동을 알렸다.
루이 부뉴엘이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극본을 쓰고 자신이 제작, 감독에 출연까지 한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달리의 그림처럼 기괴한 영상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여인의 눈을 면도칼로 베는 초반 장면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장면 뿐만 아니라 피아노 위에 당나귀 시체를 얹고 카톨릭 신부들을 함께 묶어서 끌고 가는 장면이나 잘려진 손, 해변에 파묻힌 연인 등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의 파편으로 가득하다.
결국 부뉴엘이 노린 것은 영상의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정형화된 영화나 그림의 이미지를 벗어나 기괴한 영상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줘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결국 초현실주의의 기본 틀이었다.
그렇기에 줄거리가 없어도 좋았고, 앞뒤 맥락이 닿지 않는 그림이 나열돼도 상관없었다.
이 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난해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날마다 숱한 '안달루시아의 개'를 매스컴에서 보고 있다.
바로 다름아닌 광고(CF)다.
단편적인 이미지로 구성된 사진이나 영상 광고는 보는 이에게 강한 자극으로 관심을 끈다는 점에서 '안달루시아의 개'와 일맥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루이 부뉴엘은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선각자인 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영상은 80년된 작품인만큼 좋은 화질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음향도 돌비디지털 스테레오를 지원한다.
부록으로 음성해설과 부뉴엘 아들의 인터뷰가 들어있는데, 아들 인터뷰는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장면들>
영화 초반 면도칼을 가는 청년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든 루이 부뉴엘이다. 1900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부뉴엘은 파리로 건너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 데뷔작 '안달루시아의 개'를 만든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봐도 충격적인 여인의 눈동자를 면도칼로 베는 장면. 컴퓨터그래픽(CG)이 없던 시절인 만큼 송아지 눈을 베었다는 설과 삶은 계란의 흰자를 베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이 장면은 관객을 향한 무언의 시위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려면 줄거리를 이해하고 이미지를 해석하려는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래 줄거리가 없고 이미지에 의미를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파리의 개인 극장서 개봉. 당시 피카소, 장 콕토 등 명사들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두 대의 피아노 위에 당나귀 시체를 얹고 신부들을 함께 묶어서 끌고 가는 유명한 장면. 평론가들은 이 장면을 여인을 향한 남자의 사랑이 갖가지 삶에 가로막힌 것으로 해석했다. 피아노는 생계 수단, 죽은 당나귀는 죽음, 신부는 종교를 상징하는 방해물로 본 것.
부뉴엘은 영화 상영 당시 관객들이 난동을 부릴 것에 대비해 호주머니에 돌을 잔뜩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을 던질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뉴엘은 상영당시 배경음악을 축음기에 판을 바꿔가며 직접 틀었다.
찰리 채플린이 이 작품을 좋아해 필름을 개인소장한 채 수시로 봤다고 한다. 부뉴엘은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채플린을 만났다. 채플린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부뉴엘은 친구와 함께 사람들이 쌓아놓은 선물과 트리를 모두 망가뜨려 결국 쫓겨났다.
이 작품의 음악을 직접 틀었던 부뉴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베토벤처럼 청각 장애가 있었다.
후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된 해골 문양이 그려진 나방. 부뉴엘은 말년에 도미니크회 수도승들을 만나 그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뉴엘은 예수를 바보라고 말해 수도승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뉴엘은 1930년에 당시 종교와 사회를 풍자한 '황금시대'를 개봉했으나 상영금지 된 뒤 미주로 건너갔다. 멕시코에서 15년동안 20편의 영화를 찍었고, 83세인 83년에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약 16분 분량의 흑백 무성영화인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태동을 알렸다.
루이 부뉴엘이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극본을 쓰고 자신이 제작, 감독에 출연까지 한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달리의 그림처럼 기괴한 영상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여인의 눈을 면도칼로 베는 초반 장면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장면 뿐만 아니라 피아노 위에 당나귀 시체를 얹고 카톨릭 신부들을 함께 묶어서 끌고 가는 장면이나 잘려진 손, 해변에 파묻힌 연인 등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의 파편으로 가득하다.
결국 부뉴엘이 노린 것은 영상의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정형화된 영화나 그림의 이미지를 벗어나 기괴한 영상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줘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결국 초현실주의의 기본 틀이었다.
그렇기에 줄거리가 없어도 좋았고, 앞뒤 맥락이 닿지 않는 그림이 나열돼도 상관없었다.
이 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난해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날마다 숱한 '안달루시아의 개'를 매스컴에서 보고 있다.
바로 다름아닌 광고(CF)다.
단편적인 이미지로 구성된 사진이나 영상 광고는 보는 이에게 강한 자극으로 관심을 끈다는 점에서 '안달루시아의 개'와 일맥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루이 부뉴엘은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선각자인 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영상은 80년된 작품인만큼 좋은 화질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음향도 돌비디지털 스테레오를 지원한다.
부록으로 음성해설과 부뉴엘 아들의 인터뷰가 들어있는데, 아들 인터뷰는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장면들>
영화 초반 면도칼을 가는 청년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든 루이 부뉴엘이다. 1900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부뉴엘은 파리로 건너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 데뷔작 '안달루시아의 개'를 만든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봐도 충격적인 여인의 눈동자를 면도칼로 베는 장면. 컴퓨터그래픽(CG)이 없던 시절인 만큼 송아지 눈을 베었다는 설과 삶은 계란의 흰자를 베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이 장면은 관객을 향한 무언의 시위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려면 줄거리를 이해하고 이미지를 해석하려는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래 줄거리가 없고 이미지에 의미를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파리의 개인 극장서 개봉. 당시 피카소, 장 콕토 등 명사들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두 대의 피아노 위에 당나귀 시체를 얹고 신부들을 함께 묶어서 끌고 가는 유명한 장면. 평론가들은 이 장면을 여인을 향한 남자의 사랑이 갖가지 삶에 가로막힌 것으로 해석했다. 피아노는 생계 수단, 죽은 당나귀는 죽음, 신부는 종교를 상징하는 방해물로 본 것.
부뉴엘은 영화 상영 당시 관객들이 난동을 부릴 것에 대비해 호주머니에 돌을 잔뜩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을 던질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뉴엘은 상영당시 배경음악을 축음기에 판을 바꿔가며 직접 틀었다.
찰리 채플린이 이 작품을 좋아해 필름을 개인소장한 채 수시로 봤다고 한다. 부뉴엘은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채플린을 만났다. 채플린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부뉴엘은 친구와 함께 사람들이 쌓아놓은 선물과 트리를 모두 망가뜨려 결국 쫓겨났다.
이 작품의 음악을 직접 틀었던 부뉴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베토벤처럼 청각 장애가 있었다.
후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된 해골 문양이 그려진 나방. 부뉴엘은 말년에 도미니크회 수도승들을 만나 그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뉴엘은 예수를 바보라고 말해 수도승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뉴엘은 1930년에 당시 종교와 사회를 풍자한 '황금시대'를 개봉했으나 상영금지 된 뒤 미주로 건너갔다. 멕시코에서 15년동안 20편의 영화를 찍었고, 83세인 83년에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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