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초창기 작품 '멋진 일요일'(1947년)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다.
어느 가난한 연인의 일요일 한때 데이트를 다룬 이 작품을 보면 두 사람의 로맨스보다 뒷배경에 눈이 간다.
무너진 건물 투성이인 폐허, 꼬질꼬질한 거지소년,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과 암표상 등 요즘 도쿄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의 풍경이다.
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비참했다.
한도 가즈토시가 쓴 책 <쇼와사>를 보면 당시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는데, 도쿄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전쟁 때 폭격으로 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미 군정은 식량통제법을 만들어 1949년까지 배급을 실시했다.
그러나 1인당 하루 300g의 배급량은 턱없이 부족해 당시 기록에 따르면 1,000만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암시장이 번성했다.
먹을 것 부터 입고 쓰는 생필품을 암시장에 의존하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서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공무원 월급이 40엔이었는데 암시장에서 거래된 쌀 1.4kg 가격이 70엔이었다.
설탕 3.75kg은 무려 1,000엔이어서 월 520엔을 받는 수상도 쉽게 사기 힘들었다.
사는 꼴도 말이 아니었다.
벼룩과 바퀴벌레가 없는 집이 없었고, 사람들은 온 몸에 이가 들끓었다.
덩달이 질병도 만연해 미 군정은 서둘러 DDT를 뿌려 이를 잡았고 페니실린을 보급했다.
또 최초로 복권이 발매돼 인기를 끌었다.
반면 일본 정부가 미군들을 위해 만든 공창 등 위락시설은 번성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양가집 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RAA)를 만들어 위안부를 모집했다.
도쿄 오타쿠의 오모리에서 문을 연 위안시설에는 1,360명의 위안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창 뿐 아니라 카바레, 바 등 미군들을 겨냥한 유흥업소도 번창하면서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마치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의 전후 네오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비토리아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도둑'처럼 이 같은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몽타주 기법으로 적절하게 끼워넣은 은유와 비유적인 영상들은 당시 못살고 못먹던 서민들의 비애를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아키라 감독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커피 한 잔 마실 돈이 없는 연인들은 상상 속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울면서 꿈을 꾸는 판타지 같은 작품이다.
우리도 비슷한 시절을 겪고 일어선 만큼 비단 이 영화가 일본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무려 65년전 작품인 만큼 프레임이 흔들리고 온갖 잡티와 필름노이즈가 난무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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