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파리넬리 무삭제 감독판 (블루레이)

울프팩 2011. 9. 9. 23:26

영화 '파리넬리'(Farinelli The Castrato, 1994년) 덕분에 유명해진 노래가 있다.
바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이다.

파리넬리가 여성 이상의 높은 고음으로 섬세하게 부르는 이 노래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 바람에 고음 꽤나 낸다는 고유진, 조관우 등의 가수들이 이 노래를 곧잘 따라 불렀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18세기에 맹활약했던 실존 인물인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다.
본명이 카를로 마리아 브로스키였던 파리넬리는 카스트라토, 즉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세당한 남자 가수였다.

당시 이탈리아 교황 클레멘스9세는 "모든 교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여자가 가수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여성 역할이 필요하다보니, 남자를 거세시켜 여성의 목소리를 내게 했다.

그렇게 등장한 카스트라토는 꽤나 인기와 부를 누렸다.
하지만 남자로서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영화는 성공한 가수이지만 실패한 남자가 돼버린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을 차근차근 따라갔다.
흔치 않은 이야기가 우선 시선을 끌고, 마치 한 편의 오페라나 공연을 보는 것처럼 수시로 등장하는 노래가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파리넬리의 노래는 마치 하늘로 새가 날아오르듯 목소리가 허공을 넘나드며 사람을 붕 뜨게 한다.
그만큼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괜찮은 편이다.
정지 화면에서 약간씩 밀리며 잔상이 남지만 정상적으로 감상할 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으며, 기존에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과 비교하면 월등 뛰어난 화질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으로 서라운드 효과가 나오지만 전반적으로 전방에 음향이 몰린 편이다.
부록으로 감독 인터뷰와 제작과정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본명이 카를로 마리아 브로스키인 파리넬리는 1705년 과거 나폴리왕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안드리아에서 작곡가 살바토레 브로스키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는 영화와 달리 당대 존경받는 작곡가였다.
영화에서는 형이 파리넬리를 거세하지만, 실제로는 12세때 아버지가 거세했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목소리를 내는 남성가수인 카스트라토가 되면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고 보고, 주로 가난한 집 부모들이 아들을 거세했다. 카스트라토가 되면 가성인 팔세토 창법을 쓰지 않아도 영구적인 여성 목소리를 갖게 된다.
주로 8세 전후의 나이에 실시하는 거세는 흔히 고환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히 말하면 정관을 잘라 남성 호르몬 분비를 막는 방법이다. 그래서 어른이 돼도 소년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당시 거세는 주로 마을 이발사들이 맡았으며, 마취제가 없다보니 아편을 사용하거나 아이의 목을 졸라 혼수상태에 빠뜨린 뒤 시술을 했다.
카스트라토는 여성 목소리이지만 남성처럼 호흡해 성량이 엄청났다. 하지만 수 만 명의 카스트라토 가운데 성공한 사람은 파리넬리, 세네지오 등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는 영화처럼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속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미국의 흑인 카운터테너인 데릭 리 레긴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에바 고드레브스카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해 만들었다.
주인공 파리넬리를 연기한 스테파노 디오니시. 영화 '글루미 썬데이'와 '비발디'에도 출연.
헨델은 영화처럼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고 혹평해 파리넬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파리넬리라는 예명은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본딴 것. 파리넬리는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궁에 머물러 노래를 불러 실제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도와줬다. 그때 모은 돈으로 그는 죽을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유복하게 살았으며, 죽기 전에 전 재산을 하인들에게 고루 나눠줬다.
파리넬리 형제가 같은 여성을 공유한 것은 영화적 상상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극장 개봉시 삭제된 정사 장면 등이 들어 있다. 삭제 장면들은 그다지 야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