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25일, 전남 여수시 봉산동의 한 다방에서 제7태창호 선장 이 모씨가 중개인 여 모씨를 만났다.
여 모씨는 밀입국 브로커였다.
즉 중국에서 한국으로 몰래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밀항선을 연결해주고 돈을 받는 중개자였다.
여 씨는 이 선장에게 밀항자들을 실어오는 대가로 3,000만 원을 제안했다.
이 선장은 처음에 거절했으나 결국 여 씨의 제안을 수용했다.
선장은 선금으로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7명의 선원에게 100만원씩 나눠주고 29일 배를 띄웠다.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제7태창호는 그때부터 10월 1일까지 5일간 갈치 등 생선 1,400상자를 잡으며 배를 기다렸다.
같은 기간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 조선족 60여명을 태우고 접선 지점까지 향한 중국 측의 20톤급 중간 연락선이었다.
10월 6일 사전 약속한 접선 지점인 제주 서남방 110마일 해상에서 두 배가 만났다.
단 10분만에 60여 명이 제7태창호로 옮겨 탔다.
여수를 향하던 제7태창호는 다음날인 10월 7일 해경의 검문을 받았다.
이 선장과 선원들은 해경의 단속을 피해 밀항자들을 2.5평 크기의 물탱크와 1.5평 크기의 어창, 즉 잡은 물고기를 넣어두는 창고에 나눠 숨어 있도록 했다.
그리고 창고 문을 닫은 뒤 그 위에 1톤이 넘는 무게의 안강망, 즉 고기잡는 그물을 덮었다.
비극은 그때 일어났다.
해경의 검문이 끝난 뒤 살펴보니 물탱크에 숨은 35명은 무사했으나 밀폐된 어창에 숨었던 25명은 모두 숨졌다.
죽기 직전까지 고통이 심해 몸부림을 쳤던지 손톱이 부러지고 지문이 망가진 시체가 많았다.
사람들은 죽어가며 창고 문을 열어달라고 외쳤으나 이 선장은 해경에게 들킬까봐 "걸리면 우리 모두 죽는다"며 외면했다.
이 선장은 브로커 여 씨에게 전화해 일부 밀항자들의 죽음을 알리고 조치 방법을 물었다.
여 씨는 사망자들을 바다에 버리라고 했다.
다음날인 10월 8일 새벽 6시 30분, 제7태창호는 여수시 가막만에서 마중 나온 5톤급 소형 어선에 생존자 35명을 옮겨 태웠다.
이후 바다로 되돌아간 제7태창호는 여수시 남면 소리도 남쪽 해상에서 25구의 시신을 바다에 던졌다.
여기까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나 사단은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다.
대경도에 상륙한 35명의 밀입국자를 발견한 주민들이 이를 신고했고, 경찰이 밀입국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망자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여수항에 입항한 제7태창호의 이 선장과 선원들, 중개인 여 씨가 체포됐다.
법정에서 이 선장은 중과실치사 및 사체유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선원 7명은 공범으로 유죄가 인정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이 죽은 끔찍한 일이었으나 당시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 때문에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지 않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묻혔다.
◇봉준호, 김윤석, 문성근 등 쟁쟁한 면면들...그리고 박유천
뒤늦게 이 사건을 주목한 것은 연극이었다.
김민정 작가가 이 사건을 토대로 희곡을 썼고, 극단 연우무대가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 작품이 바로 '해무'다.
다시 이를 눈여겨 본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다.
연극 '날보러 와요'를 개작해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명성을 얻은 봉 감독은 잘 만든 연극과 희곡의 힘을 알아봤다.
봉 감독은 영화 제작 및 기획, 각본 작업에 참여했으나 연출을 직접 맡지 않았다.
대신 '살인의 추억' 각본 작업에 참여했던 심성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영화 '해무'(2014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개봉했다.
영화 '해무'는 실제 사건의 충격적인 요소와 함께 봉 감독의 명성과 문성근, 김윤석, 김상호, 한예리, 이희준 등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 아이돌 스타 박유천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아마 요즘이라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박유천 때문에 개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블루레이에 수록된 심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 해설, 봉 감독이 나오는 제작 과정 등 부록을 들어 보면 박유천이 연기를 꽤 잘했다고 칭찬했다.
실제로 모든 것을 차치하고 박유천의 연기만 보면 꽤 열심히 했고 자연스럽다.
영화의 장점은 아무래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연극에서는 재현하기 힘든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작품에서는 실제 사건에 없는 요소들이 추가됐다.
바로 잔혹한 시체 손상 장면이다.
시체가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벌이는 끔찍한 장면과 막판 벌어지는 등장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은 영화적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여기까지는 영화의 드라마투르기적 재미를 고조시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난데없이 끼어든 로맨스는 사족 같다는 말들이 많다.
위기의 순간에 벌어지는 로맨스는 한예리가 연기한 여주인공 때문에 벌어지는 박유천의 행동을 설명할 중요한 동인이기는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이해와 공감이 엇갈릴 수 있다.
과연 절박한 순간에 벌어지는 남녀 간에 로맨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는 개인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정답은 없지만 그만큼 사람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논란이 분분한 대목이다.
실제로 영화는 개봉 전 주목받은 것에 비하면 흥행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블루레이를 다시 찬찬히 돌려보면 그렇게 폄하될 작품은 아닌 듯 하지만 일부 설정은 논란을 불러올 여지가 분명 있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다.
내용상 밤 장면과 선체 내부 장면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고 입자감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괜찮은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특히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장면과 긴장이 흐르는 기관실 내부 장면에서는 각종 효과음이 적당하게 살아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부록으로 심 감독과 배우들 음성해설, 감독과 배우들 인터뷰, 제작과정, 삭제 장면, 선체 재생, 음악과 CG효과 비교, 단편 영상 등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부록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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