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은 경험담에 강한 작가다.
자신이나 타인의 경험담을 녹진녹진하게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전 국회의원 이철용의 구술을 받아 적은 '어둠의 자식들', 작가 자신의 베트남전 경험을 담은 '무기의 그늘',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을 읽어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중학교 때 몰래 읽은 '어둠의 자식들'은 걸쭉한 육두문자와 놀라운 이야기로 어린 청춘을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베트남전의 처절함과 공황을 다룬 '무기의 그늘'이나, 대학 시절 금서여서 몰래 돌려 읽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세상의 참혹함에 새삼 눈뜨게 만든 놀라운 책들이다.
문화부 시절 문학 담당 기자들에 따르면 술 한 잔 앞에놓고 몇 시간이고 혼자 떠들만큼 입담이 좋아 '황구라'로 통했다는데, 그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 수다가 전부는 아니다.
'장길산'같은 대하 소설을 읽어보면 일관성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묵직한 서사적 힘을 경험할 수 있다.
맛깔나는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 서사적 구성력의 힘, 이게 황석영의 뛰어남이다.
근래 베스트셀러가 된 '개밥바라기별'도 마찬가지다.
작가 자신의 청춘 시절 경험담과 구성력이 결합된 이 소설을 뒤늦게 읽고나서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기뻤다.
작가 자신의 말마따나 책에는 시대에 따라 외양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젊음의 한 때가 그득하다.
때로는 가슴아프고 때로는 아쉽고 때로는 치기로 가득찼을 수 있겠지만 그 시절의 소중함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시기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예전을 떠올리며 현재를 돌아볼 기회를, 지금 그때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다양성에 눈뜨게 만드는 책이다.
재삼 황석영의 뛰어난 작가적 재능과 위대함에 경의를 표한다.
아쉬운 것은 표지 그림.
커버는 물론이고 커버를 벗긴 뒤 나타나는 속 표지 그림 또한 책을 너무 가벼워 보이게 만든다.
지금처럼 직설적인 그림보다는 책의 내용을 감안하면 좀 더 단정한 표지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표지는 얼굴인 만큼 나름 중요하다.
참고로, 개밥바라기별은 저녁 어스름때 뜨는 샛별을 부르는 말이란다.
사람들이 저녁을 지어먹고 나서 개가 저녁밥 차례를 기다릴 때 뜨는 별이라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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