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 1958년)은 개봉 당시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유령 이야기를 들이대면서 너무 미적지근한 스토리로 흘렀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복잡다단한 심리적 갈등을 다룬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걸작으로 재조명됐다.
내용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형사를 그만둔 주인공(제임스 스튜어트)이 유령에게 홀린 것으로 의심되는 친구의 부인(킴 노박)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고소공포증은 단순 증세를 떠나 이야기 전개상 아주 중요한 소재이다.
형사가 갖고 있는 고소공포증은 사건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자 사건 전개의 발단이 된다.
원작은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스 나르스작이 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라는 소설이다.
히치콕 감독은 원작의 줄거리를 현대화하고 프랑스 파리와 마르세유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변경했다.
그만큼 영화는 개봉 당시 좀 더 현대적이고 미국적으로 바뀌었다.
이 작품의 묘미는 심령물을 연상케 하는 공포 요소와 추리소설의 미스테리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해 긴장감을 끌어올린데 있다.
특히 꽃을 사는 여인의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 등 미행 과정을 주인공의 관점에서 바라본 카메라 앵글은 히치콕 스릴러물 특유의 관음증 요소를 자극한다.
주인공을 맡은 히치콕의 페르소나인 제임스 스튜어트와 여주인공을 연기한 킴 노박의 연기도 좋았고, 공간을 여유있게 잡아낸 카메라 앵글도 인상적이다.
특히 주인공이 여인을 쫓아 종탑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고소공포증을 표현한 카메라 움직임은 발군이다.
더불어 두 남녀를 360도 감싸며 보여주는 회전 키스도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써먹는 수법이지만 키스를 나누는 남녀 주인공을 감싸듯 돌며 보여주는 장면은 개봉 당시 화제가 됐다.
국내 출시된 '히치콕 클래식 콜렉션' 4K 박스세트에 포함된 이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으로 구성됐다.
2016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다.
물론 제작연도가 오래돼서 입자가 거칠게 나타나지만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복원한 DVD 타이틀에 비해서 월등 개선됐다.
우선 디테일이 확연하게 개선됐고 색감도 잘 살아났다.
다만 36분 20초부터 30초 사이에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DTS X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트뤼포의 감독 인터뷰, 윌리엄 프리드킨의 해설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여주인공을 맡은 킴 노박. 원래 여주인공으로 베라 마일스가 캐스팅됐으나 1950년대 타잔을 연기한 고든 스콧과 결혼하면서 아이를 가져 그만뒀다.
초반 지붕 추격장면은 앵거스 맥페일이 구상했다. 히치콕은 주인공 애칭을 스코틀랜드인 앵거스를 기리는 뜻에서 스코티로 정했다.
네거티브 필름이 손상된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후원을 받아 다시 복원됐다. 복원은 컬러프린트를 참고로 네거티브 필름을 살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주인공의 친구 마지를 연기한 바바라 벨 게디스. 그는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이 작품은 파라마운트가 1954년 창안한 비스타비전 방식으로 촬영했다.
행인으로 카메오 출연한 히치콕 감독. 히치콕은 촬영 중 탈장 증세와 대장염, 담석제거 등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비스타비전은 통상 필름이 1콤마를 사용하는데 비해 좌,우로 2콤마를 사용해 영상이 선명하다. 그만큼 영상 정보를 많이 담기 때문. 비스타비전은 특이하게 필름이 수평으로 돌아가며 필름 위쪽에 사운드트랙이 들어간다.
각종 의상과 초상화 등은 처음 주연으로 캐스팅 된 베라 마일스를 모델로 제작됐다.
미술관 장면에 나오는 샌프란시스코의 예술박물관인 레전 오브 아너 궁전. 프랑스의 르부르 박물관을 흉내냈다.
여주인공이 자살을 시도하는 금문교 근처 포트 포인트. 약간 뿌연 영상은 촬영시 스모그 필터를 사용했기 때문.
가슴이 풍만했던 킴 노박은 평소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해 여러 장면에서 그렇게 출연했다. 히치콕은 당시 24세였던 노박이 너무 자존심이 세고 잘못된 생각을 고집한다고 생각했다.
복원팀은 비스타비전을 35mm 필름으로 옮기면 영상이 축소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고 65mm필름으로 1콤마씩 복원한 뒤 다시 70mm 필름으로 옮겼다.
주인공이 느끼는 혼란과 현기증을 특수효과로 표현.
종탑 내부는 21미터 높이의 세트다. 종탑 계단에서 주인공이 현기증을 느끼는 장면은 계단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촬영.
미니어처를 옆으로 눞힌 뒤 카메라가 줌인으로 들어가면서, 카메라 몸체는 달리 트랙 위에서 밖으로 잡아빼는 방법으로 찍어 어지럼 증세를 기막히게 표현했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 교회의 종탑은 매트페인팅으로 그려 넣었다. 원래 종탑은 오래 전 화재로 소실됐다.
유명한 360도 회전 키스는 카메라도 움직이지만, 주변 배경이 회전했다.
히치콕 부인은 편집에 관여해 킴 노박이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갈 때 굵은 다리가 보이는 장면을 잘라내도록 조언했다. 촬영은 대부분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다.
킴 노박은 회색 정장을 싫어했으나 히치콕이 입을 것을 고집했다.
장난을 좋아한 히치콕은 킴 노박이 세미누드를 찍는 날 분장실에 털 뽑은 닭을 걸어 놨다. 그러나 킴은 이를 몹시 혐오했고, 이후 히치콕 영화에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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