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기주봉 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14번째 작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년)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홍 감독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뜻밖에도 프랑스 가수 제인 버킨이 깜짝 출연한다. 배우이자 가수인 그는 프랑스 샹송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마치 소녀가 속삭이는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유명한 노래 'Yesterday Yes a Day'를 들어보면 그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67세 할머니여서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젊은 시절에는 아주 예쁜 패션모델 같은 외모로 이름을 날렸다. 역시 유명 가수인 세르주 갱스부르와 결혼해 낳은 딸 샤를르 갱스부르 또한 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 버킨이 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는 홍 감독의 전작인..

밤과 낮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여덟 번 째 영화 '밤과 낮'(2008년)은 이중성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딱히 이중성을 다룬 영화라고 단정하기 힘든 이유는, 그의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워낙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다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우연히 대마초를 얻어 피웠다가 잡힐까봐 파리로 몸을 피한 어느 유부남 화가의 이야기다. 설정부터 범상치 않아 웃음이 나온다. 이 작품은 서로 대립하면서 묘한 긴장관계를 불러 일으키는 이중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우선 서로 댓구를 이루는 제목부터 그렇다. 하루를 구성하는 밤과 낮은 상호보완적이면서 서로 함께할 수 없는 분리적인 요소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성남(김영호)과 아내 성인(황수정)이 있는 서로 다른 장소인 파리와 서울의 시간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공간의 존..

원더풀 데이즈 - 감독판 (블루레이)

김문생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Wonderful Days, 2003년)는 우리 애니메이션계에서 독특한 시도를 한 작품이다. 우선 인물들을 2차원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뒤 실사 촬영한 배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 하나의 영상으로 만드는 3중처리 과정을 거쳤다. 그 바람에 일부 영상들은 실사 영화처럼 사실적이고 정교한 그림을 보여준다. 특히 미니어처를 제작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미르 풍경 등은 다층 레이어를 통해 영상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부실한 이야기다. 미래의 에코반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세력과 이를 벗어나려는 세력과의 싸움을 그린 이야기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흡입력 또한 떨어진다. 모두에게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부분은 영화 '토탈리콜'..

멋진 하루 (블루레이)

돈이란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특히 채무로 얽힌 인간 관계는 참 피곤하다. 여기에 채무 관계가 헤어진 연인사이라면, 생각하기 싫을 만큼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진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2008년)는 제목과 달리 바로 그 불편한 인간 관계에 카메라를 들이 댔다. 옛 남자(하정우)가 꿔간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나타난 여자(전도연)는 남자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채권 수금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없는 남자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몇 십만 원씩 다시 꿔서 여자의 돈을 갚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신산스럽다. 그러면서도 남자가 한심스럽고 얄밉지만 밉지 않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 속에 따스한 진정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자를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은, 극..

북촌방향

이 영화, 참 기이하다. 어디서나 봄직한 일상의 소소함 속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던 게 그동안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라면 그의 12번째 영화인 '북촌방향'(2011년)은 전작들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조각그림처럼 흩어진 평이한 삶의 단면들이 같은 점이라면, 뒤틀린 시공간은 다른 점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힘들다. 선배(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영화감독(유준상)이 북촌이라는 동네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는 내용은 언뜻보면 하루 동안 이야기 같으면서 며칠 사이 벌어진 일 같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시간의 배열도 혼란스러워 인과관계도 분명치 않다. 즉, 귀퉁이가 닳아서 두루뭉실한 퍼즐 조각처럼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