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서부극 31

3: 10 투 유마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3: 10 투 유마'(3: 10 to Yuma, 2007년)는 특유의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잘 다듬어진 서부극이다. 3시 10분까지 유마로 죄수를 호송해야 하는 임무를 띤 주인공의 외로운 싸움을 다룬 이 작품은 정의의 사나이가 모든 것을 거머쥔다는 미국식 서부극보다는 허무한 폭력과 싸움의 처절한 뒤 끝을 강조한 점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엘모어 레너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죄수 호송을 선택한 주인공, 선과 악을 넘나들며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악당,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악당에 대한 동경이 교차하는 아들 등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정교하게 그려내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

쟝고

프랑코 네로가 주연을 맡은 서부극 '쟝고'(Django, 1966년)는 스파게티 웨스턴(일본 표현인 마카로니 웨스턴)의 걸작이다.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감독한 이 작품은 관을 끌고 다니는 독특한 주인공과 루이스 바칼로프가 작곡한 주제가로 유명하다. 이 작품이 스파게티 웨스턴 중에서도 독특한 점은 기관총을 사용한 집단 학살극 때문이다. 덕분에 잔혹 웨스턴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숱한 아류작들을 낳았다. 이 작품을 비롯해 세르지오 레오네, 세르지오 코르부치 등 이탈리안 감독들이 만든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미국 서부극과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두 사람은 모두 좌파적 색채가 강한 서부극을 만든다. 미국 서부극은 개인 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영웅과 악당이 속한 다른 집단의 싸움, 즉 선악 구도를 강조..

내일을 향해 쏴라 (SE)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년)는 참으로 독특한 서부극이다. 실화를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은행을 터는 악당이면서도 결코 밉지 않은 주인공들이 등장해 웃음과 안타까움, 통쾌함을 선사한다. 버디물이자, 안티 히어로물이면서 서부극판 느와르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 정신이 미국 사회를 휘젓던 무렵에 제작됐다. 그만큼 영화에는 반항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 TV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경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황금콤비가 빚어내는 완벽한 연기, BJ 토머스의 더 할 수 없이 흥겨운 주제가 등..

밴디다스

조아킴 로엔닝과 에스펜 샌드버그가 공동 감독한 '밴디다스'는 여성판 '내일을 향해 쏴라'다. 19세기 멕시코의 마을에 들이닥쳐 은행을 장악한 미국 악당들에게 재산과 아버지를 잃은 두 여성이 은행강도가 돼서 복수하는 내용이다. 셀마 헤이엑과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인공을 맡아 선댄스 키드와 부치 캐시디처럼 총을 휘두르며 은행을 턴다. 그렇지만 버디 무비의 형태만 닮았을 뿐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재기발랄한 낭만과 막판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비장미는 없다. 대신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에 화려한 총격전보다는 섹시 코드만 지나치게 부각됐다. 어설픈 여주인공들을 내세워 정통 서부극 스타일로 정면 승부를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섹시 코드로 빗겨간 것이 흥행을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

롱라이더스

월터 힐(Walter Hill) 감독의 '롱라이더스'(The Long Riders, 1980년)는 샘 페킨파 감독의 폭력미학 계보를 잇는 서부극이다. 격렬한 총격전과 죽음의 순간을 '와일드 번치'처럼 슬로 모션으로 처리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내용은 미국의 남북전쟁 직후 은행을 털고 열차를 습격해 미주리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영거 형제 일당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그다지 이야기의 짜임새가 튼실하지 못하고 엉성한 편이어서 다소 맥이 빠지지만 가끔씩 나오는 총격 장면만큼은 훌륭하다. 특히 후반부 제시 제임스와 영거 형제가 은행을 털다가 습격을 받는 장면은 빠른 편집과 슬로 모션의 적절한 안배로 샘 페킨파 감독의 작품을 다시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보다 10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