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은 후기 작품들 때문에 극단적 보수주의 작가로 욕을 먹지만 그가 초창기에 내놓은 작품들은 상당히 훌륭하다. 특히 '사과와 다섯병정' '금시조' '칼레파 타 칼라' 같은 단편 소설들이 아주 빼어나다. 마당문고에서 나온 '사과와 다섯병정'이라는 이문열 단편집에 실린 '익명의 섬'도 마찬가지. 이 소설은 하나의 성씨로 이뤄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안이다 보니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익명의 존재인 떠돌이 부랑자가 성의 탈출구가 돼 준다는 내용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이 성의 일탈을 통해 도덕적 분출구를 찾는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을 보면 과연 그가 보수주의자가 맞는 지 의아할 정도. 하지만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 어떤 현상을 관찰하는데만 그치는 방관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