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일본 55

소라닌(블루레이)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소라닌'(ソラニン, 2010년)은 크게 기대할 것 없는 진부한 청춘 멜로물이다. 아사노 이니오가 일본 만화잡지에 연재한 만화를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밴드를 하는 20대 남녀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동거하며 6년째 열애 중인 메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코라 켄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메이코는 더 이상 원치 않은 직장에 다니는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해 그만두고 타네다도 작곡에 몰두한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에 비해 현실은 냉혹하다. 타네다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을 기약할 수 없는 일상에 지쳐 음악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게 꿈을 접는 타네다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연인의 죽음으..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블루레이)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カメラを止めるな!, 2017년)는 독특한 영화다. B급 좀비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언뜻 보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구성이 독특하다. 영화 속 영화를 먼저 보여주고 제작현장을 다루면서 복기하는 방식이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안에는 마치 러시아의 오뚝이 인형처럼 3개의 영화가 들어 있다. 캥거루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새끼 캥거루처럼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좀비물을 만드는 제작팀 얘기가 있고 그 안에 서 그들이 또 다른 좀비물을 만든다. 세상의 모든 좀비 영화가 대동소이하듯 영화 속 제작팀이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하기 위해 만드는 좀비물은 뻔한 내용이다. 버려진 공장에서 좀비 영화를 찍던 제작팀이 실제 좀비를 만나 쫓기는..

007 스카이폴 (4K 블루레이)

"취미가 뭔가?" "부활이지." 악당과 007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이 대사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샘 멘데스 감독이 007 영화 탄생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시리즈물로 내놓은 '007 스카이폴'(Skyfall, 2012년)은 악당이 파괴한 첩보조직과 제임스 본드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부활은 소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를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새로 태어났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듯 007만 빼고 더 젊어지고 강건해 졌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 머니페니는 총질을 마다 않는 검은 피부의 섹시한 젊은 여인으로 거듭났고, 데스몬드 르웰린이 타계할 때까지 연기한 늙은 과학자 Q는 컴퓨터를 귀신같이 다루는 젊은이가 됐다. 압권은 007이..

어느 가족(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2018년)은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내용은 연금을 받는 어느 할머니를 중심으로 뭉친 희한한 도둑놈 가족 이야기다. 구성원들은 모두 피를 나눈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 사연을 지닌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도둑질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면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이다. 비록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좀도둑질을 하고 성인업소에서 일을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친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 어느날 이들은 뜻하지 않게 합류한 여자아이 때문에 졸지에 유괴범으로 몰릴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오히려 학대하고 방치하는 친부모보다 낯선 이들에게 따뜻함을 느낀..

걸어도 걸어도(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다. 일본의 배우 겸 가수였던 이시다 아유미가 부른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다. 노랫말 발음대로라면 '부루라이또 요꼬하마'다. 일본 노래가 금지된 1980대 초반 이 노래와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기니'가 국내에서도 엄청 인기였다. 일본 노래 자체가 금지된 시절 이 노래들은 서울의 이태원이나 세운상가 등지에서 판매한 '일본 노래 모음'이라는 카세트 테이프에 들어 있었다. 금지곡에 대한 호기심과 친구들을 통해 들어본 멜로디에 반해 이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애잔한 엔카풍 노래였는데 멜로디에 반해서 여러번 듣다보니 뜻도 모르며 가사를 따라 부르게 됐다.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나와 놀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