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최민식 17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2005년 윤종빈 감독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들고 나왔을 때, 훗날 꽤 문제작을 만들 만한 감독으로 보였다. 쉽게 다루기 힘든 군대 내 부조리를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 솜씨가 일품이었기 때문. 그로부터 7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돌아온 그의 시선은 한층 예리하고 깊어졌다. 윤 감독이 각본까지 쓴 이 작품은 피라미드처럼 올라가는 권력에 기생하는 한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 부패한 세관공무원이었다가 해고된 익현(최민식)은 살아남기 위해 뒷골목 권력인 조폭두목 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더 잘 살기 위해 검사 정치인 등 권력의 상층부에 줄을 댄다. 더럽게 얽힌 먹이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결코 동정받..

영화 2012.02.04

악마를 보았다 (블루레이)

[아래 캡처 화면에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여서 잔혹 영상이 일부 들어 있으니 청소년들은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운영자가 자체 성인 인증 기능을 글에 붙일 수 없게 돼 있어 이런 글을 대신 띄웁니다.] 논란이 많았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년)는 제목처럼 인간 악행의 끝을 보여준다. 뼈속부터 타고난 악마처럼 죄의식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은 비정상적인 사이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짓을 벌인다. 여자들을 납치해 폭행하고 토막살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은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세상에, 악마적 상상력이 너무 끔찍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터져 나올만 하지만 어쩌랴, 지존파 막가파 사건 등을 보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담하다. 결국 감독과 작가의 상상..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참으로 불편한 영화다. 살인마에게 애인을 잃은 사내가 복수에 나섰으니 얼마나 잔혹하겠는가. 때리고 찌르는 것은 보통이고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 발긴다. 그 바람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사내의 증오심이 뿜어내는 핏빛 복수로 새빨갛게 물든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악마를 본다. 죽이려 달려드는 상대에게서, 그리고 상대를 파괴하려 드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들은 각자 악마를 본다. 관객은 그렇게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본성의 파괴라는 또다른 악마를 본다. 스크린 속에서, 스크린 밖에서 서로 악마를 보는 셈이다. 악마들의 향연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하다. 인육을 먹고, 더러 개에게도 먹이는 장면은 재심의를 받기 위해 편집에서 걸러냈지만 정황상 추정이 가능..

영화 2010.08.15

태극기 휘날리며 (SE)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보면 '친구' '형사'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 생각난다. '태극기...'를 보고 강남의 사무실로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온 유학파인 그는 대뜸 실크 스크린 때문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보통 부드러운 영상을 얻기 위해 실크 스크린으로 햇빛을 걸러내면서 촬영한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물론이고 '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는 엄청난 야외 세트를 몽땅 실크 스크린으로 덮었다. 그런데 국내에는 엄청난 크기의 실크 스크린이 없다. 돈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실크 스크린은 황기석 감독이 갖고 있던 40미터짜리였단다. 40미터..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에 이어 복수 3부작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유괴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여인(이영애)이 출소 후 원래 범인(최민식)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이 작품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흔치 않은 소재와 충격적 영상들로 점철돼 있다. 박 감독의 복수 3부작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갈등의 극단적 충돌과 폭발이다. 주인공들은 보통의 경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극을 펼친다. 물론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갈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 부분도 있지만 박 감독은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이 같은 방법은 영상 표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작품 속 이영애의 모습. 금자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