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최민식 17

루시 (블루레이)

뤽 베송 감독의 '루시'(LUCY, 2014년)는 허탈한 영화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독의 전작인 '니키타'나 또다른 여성 전사물 '한나' '웉트라 바이올렛' 같은 액션을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러웠다. 내용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능력을 획득하게 된 여인이 복수를 벌이는 이야기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의 뇌 활용 능력에 궁금증을 던졌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뇌 용적의 10% 가량을 활용한다고 한다. 이를 개발해 20% 이상을 활용하게 되면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아무도 거기까지 가보지 못했으니 감독의 황당한 상상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폭주 기관차처럼 무한 상상궤도를 달린다. 극 중 루시..

명량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

영화 2014.08.15

신세계 (블루레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년)는 깔끔한 영화다. 장르에 충실한 느와르 영화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비정한 사나이들의 혈투를 피비린내 가득한 영상으로 묘사했다. 내용은 스파이를 통해 범죄 조직을 장악하려는 경찰과 이에 맞선 조직 폭력배들의 이야기다. 신분을 숨긴 채 잠입한 경찰 스파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홍콩 영화 '무간도' 시리즈를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들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가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는 스파이물 특유의 긴장과 두뇌 플레이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내부 스파이를 색출하려는 조폭들과 경찰들의 숨막히는 암투가 빚어내는 긴장감이 일품이다. 그만큼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화제작 작가 출신 답게 박..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들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내용은 홍콩영화 '무간도'처럼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로 파고 든 경찰이 범죄조직을 와해시키는 이야기. 설정부터 그러니, 정체가 드러날까 봐 가슴을 조이는 경찰만큼이나 보는 사람도 숨이 가쁘다.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선 최고지만, 칼 끝 같은 긴장 속에 한 치의 여유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각종 의심과 암투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느라 뻣뻣하게 굳어있는 등장인물들의 스트레스가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만큼 일말의 휴식같은 러브라인이나 웃음 코드의 부재가 아쉽다. 대신 그 자리를 권력을 노린 조폭들의 쌍욕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영화 2013.02.23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블루레이)

윤종빈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년)는 어둠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부패한 세관공무원에서 뒷골목 조폭들과 손잡고 반달(반건달)로 변신한 익현(최민식)은 뇌물로 맺은 인맥으로 승승장구한다.주먹과 뇌물이 오가는 더러운 먹이 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어서 결코 동정받지 못한다.유일하게 선한 희생자가 있다면 그들의 가족이다.한밤 중 들이닥친 경찰의 손에 끌려가는 수갑 찬 애비를 봐야 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건달들 틈바구니에서 호로새끼가 될 지 모를 위협 속에 하루하루 살아간다.이를 윤 감독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건조하게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