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크리스찬 베일 16

포카혼타스 (블루레이)

약 10여일 전인 10월24일, 미국에서 한 인디언이 사망했다.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 주인공 아버지로 출연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Pocahontas, 1995년)에서 추장 목소리를 연기한 러셀 민즈다. 하지만 그는 배우이기 이전에 미국 인디언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전사였다. 젊어서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던 그는 나중에 인디언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73년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벌인 운디드니 항쟁이었다. 70일 동안 경찰과 대치한 끝에 몇 명이 죽은 이 점거 시위에서 그는 인디언 대변인을 맡아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미국 프로스포츠팀에 인디언 명칭이나 마스코트 사용 중단을 처음 요구한 인물이기도 하다. 1987년 대선 때 포르노 잡지 를 ..

다크나이트 라이즈

배트맨이 나오는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꽤 재미있게 봤기에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다크나이트는 밤을 좋아하고 박쥐 복장으로 숨어 다니는 배트맨 특유의 음울한 서정을 잘 담아낸 시리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년)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암울한 분위기는 참담할 정도로 깊어져 도시 하나가 파멸의 위험에 잠긴다. 악이 강할수록 영웅은 돋보이는 법. 언제나 그렇듯 무력한 공권력을 대신해 악을 응징하는 배트맨의 활약이 전작 못지 않게 요란하다. 하지만 전작들보다 배트맨의 등장이 많이 줄었다. 영웅도 나이를 먹어 관절이 예전 같지 않고 주먹도 많이 약해졌다. 그 바람의 영웅은 강철같은 악당 베인을 만..

영화 2012.07.21

터미네이터 4 : 미래 전쟁의 시작 (블루레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SF영화 속에서도 독특한 범주에 속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미래로 보내 자신을 잉태하게 만드는 등 인물들의 관계가 시공간을 왜곡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물고 물린다. 4편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에는 기계들에게 잡혀간 미래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이 나서는 이야기다. 말이 되고 안되고는 따질 필요가 없다. 어차피 허구를 바탕으로 출발한 SF 시리즈물이니까. 미래의 아버지가 미래의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다는 1편의 설정은 충격적이면서 기발했다. 그런데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소재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요란한 액션만 남았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오토바이로 변하는 기계부터 집채보다 큰 대형 로봇, 사람을 쏙닮은 그럴 듯한 로봇까지 희한한 존재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람보'와 '록키'가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명사였듯이 '코만도'와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그만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아놀드가 빠지면 팥 없는 찐빵이다. 맥지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 4번째 시리즈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2009년)이 그 꼴이 됐다. 아놀드가 나오지 않을 뿐더러(영화 후반 등장하는 아놀드 모습은 특수 분장을 한 대역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물질문명에 경도된 인간을 준엄하게 질타하는 메시지도 사라졌다. 팥 대신 찐빵을 채운 것은 화면 가득 요란하게 때려부수는 액션 뿐이다. '미녀 삼총사' 시리즈를 감독한 맥지 답게 이번 작품은 활극에 초점을 맞췄다. 터미네이터와 사라 코너의 자리는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싱턴이..

영화 2009.06.05

3: 10 투 유마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3: 10 투 유마'(3: 10 to Yuma, 2007년)는 특유의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잘 다듬어진 서부극이다. 3시 10분까지 유마로 죄수를 호송해야 하는 임무를 띤 주인공의 외로운 싸움을 다룬 이 작품은 정의의 사나이가 모든 것을 거머쥔다는 미국식 서부극보다는 허무한 폭력과 싸움의 처절한 뒤 끝을 강조한 점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엘모어 레너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죄수 호송을 선택한 주인공, 선과 악을 넘나들며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악당,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악당에 대한 동경이 교차하는 아들 등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정교하게 그려내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