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울프팩 2005. 4. 14. 14:25

코엔 형제는 그동안 작품들로 미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이다.
'파고' '레이디킬러' '밀러스 크로싱'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등 여러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아니 심지어 죽기까지 하면서도 늘 빈 손이다.

세상이 이들의 작품 같다면 참 살기 힘들 것 같다.
어찌 보면 머리 굴리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는 얘기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선량한 사람들마저 골탕 먹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조엘 코엔(Joel Coen)이 감독하고 에단 코엔(Ethan Coen)이 함께 각본을 쓰고 제작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2001년)도 마찬가지.
촌마을 이발사(빌리 밥 손튼 Billy Bob Thornton)가 어느 날 손님에게서 우연히 들은 사업에 꽂혀 자금을 마련하려고 머리를 굴리면서 세상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억울한 반전이 거듭되며 사건은 복잡해지고 결국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제로섬 싸움이 돼버린다.
코엔 형제는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을 허무한 스토리의 코미디가 아닌 누아르풍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컬러로 촬영해 흑백으로 상영하는 특이한 방법을 썼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오래전 범죄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긴장감보다 허무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더 크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한정판 DVD 타이틀은 재미있게도 극장 상영한 흑백판과 오리지널 컬러판이 2장의 디스크에 각각 수록돼 있다.

누아르풍 느낌은 임팩트가 강한 흑백 영상이 더 우러나지만, 컬러 영상은 나름대로 색상들이 풍기는 친근함과 은근한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컬러판을 더 좋아한다.

화질은 무난하며 컬러판에 서라운드 효과가 좋은 DTS 음향이 들어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주인공 이발사 에드를 맡은 빌리 밥 손튼의 연기가 대단하다. 그는 스티브 맥퀸이나 찰스 브론슨처럼 우그러뜨린 표정하나로 많은 것을 보여준다. 대사도 많지 않지만 촬영당시 기관지염을 앓아 실감 나는 인상이 나왔다는 후문.
에드의 억울한 마누라는 '파고'에서 여자경찰로 나온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했다.
이 작품은 코닥5277 필름을 사용해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 타이틀용 코닥2369 필름에 흑백으로 현상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코닥5277 필름이 명암도가 낮아 컬러 영상도 거의 단색에 가까울 정도로 채도가 낮다.
조그만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이 무대 위 조명처럼 펼쳐지는 인상적인 장면. 오래도록 코엔 형제와 호흡을 맞춘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의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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