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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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컨츄리

진실은 언제인가 세상을 바꿔놓는다.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North Country, 2005년)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1984년 10월 미국 미네소타 에벨레스 광산에 근무하던 여자광부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성희롱 집단소송을 다룬 실화다. 미국 최초의 집단 성희롱 소송인 이 사건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무려 10여년에 걸친 재판 끝에 1998년 12월 승소판결이 났다. 이후 이 소송은 성희롱 뿐만 아니라 성차별 관련 집단소송을 야기하는 중요한 촉매제가 됐다. 국내에서는 2000년 롯데호텔 여성 노조원 270여명이 제기한 성희롱 소송이 최초의 성희롱 관련 집단소송이었으며 이듬해에는 (주)2001 아웃렛에서 유사한 소송을 제기했다. '웨일 라이더'로 주목을 받은 니키 카로 ..

럭키 넘버 슬레븐

폴 맥기건 감독의 '럭키 넘버 슬레븐'(Lucky Number Slevin, 2006년)은 지독히 운이 없는 사내의 희한한 모험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슬레빈(조시 하트넷)은 바람난 애인 때문에 홧김에 집을 나와 친구집을 방문하다가 강도를 만나 몽땅 털린다. 할 수 없이 외출한 친구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때 하필 친구의 얼굴을 모르는 빚쟁이들이 들이닥친다. 범죄조직원인 빚쟁이들에게 친구 대신 끌려간 슬레븐은 빚을 갚거나 살인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매사에 모든 일들이 꼬이기만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연상케한다. 또 사건의 진실을 궁금하게 만드는 끝없는 수수께끼의 연속은 '유주얼 서스펙트'를 ..

강적

조민호 감독의 '강적'(2006년)을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은 제목이었다. 영화는 폭력조직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살인누명을 뒤집어 쓴 사나이(천정명)와 난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가난한 형사(박중훈)의 혈투를 다루고 있다. 쓰러지고 깨지는 두 주인공을 보면서 과연 강적의 의미가 무엇이며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못내 궁금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의문은 DVD에 실린 감독의 음성해설을 듣고서야 풀렸다. 감독 왈, "빈주먹이 강적"이라는 것. 가진 것 없어도 자기 생각이나 주관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다면 강적이라는 소리다. 감독의 해설을 듣지 않으면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 작품의 한계다.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다보니 영화는 계속 이야기가 겉돌며 늘어진다. 조 감독이 액션물에..

최소리 '두들림' 동영상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가을이었다. 이름도 특이했지만 생머리를 길게 길러서 허리까지 드리우고 하얀색 개량한복을 입은 채 1집 음반을 들고 신문사를 찾아온 그는 꼭 도사같았다.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육식은 않고, 채식만 즐겼다.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두드려 소리를 만들 수 있다며 그 자리에서 젓가락으로 유리잔을 두드리며 다양한 리듬과 소리의 고저로 독특한 그만의 음악을 들려줬다. 알고보니 나이도 엇비슷했다. 그때부터 최소리와 친구가 돼서 어언 10년이 흘렀다. 최소리는 참으로 독특한 음악인이다. 12살때 처음 북채를 잡기 시작해 30년 가까이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유현상이 활동했던 록그룹 백두산에서 드러머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오랜 세월 북을 두드리는 바람에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데도..

오만과 편견

눈으로 읽는 영상소설인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2005년)은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조 라이트 감독은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바꿔놓았다. 18세기 영국의 하트포드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자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연애를 하면서 빚을 수 있는 남녀와 오만한 모습과 편견들을 다뤘다. 이국적인 배경과 동떨어진 시대를 다루다보니 서로 얽히고 설키는 복잡한 감정 묘사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해도 수려하게 펼쳐지는 경관과 서정적인 영상 만큼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일부러 튀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영상들은 한 폭의 풍경화같다. 여기에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담당한 음악도 그림과 잘 어우러져 감성을 자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