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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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언리미티드

007 시리즈 19번째 작품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1999년)는 액션에만 치중했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액션보다 드라마에 치중한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가 감독을 맡아 송유관과 핵잠수함을 장악해 테러를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와 007(피어스 브로스넌 Pierce Brosnan)의 대결을 긴장감 있게 다뤘다. 주제가는 가비지가 불렀다. 눈에 띄는 것은 요란한 액션과 더불어 독특한 배경을 지닌 배역들. 스톡홀름 증후군을 지닌 악녀 본드걸로 1980년대 아이돌 스타였던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등장하며 007을 돕는 선한 본드걸은 '스타쉽 트루퍼스'로 알려진 데니스 리처드(Denise ..

말아톤 (CE)

흥행 성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관객 520만 명이라는 수치는 여러 가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아니하느니만 못한 법,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자폐아 마라토너 배형진 군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2004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다. 하지만 500만 명이나 들만한 영화인지 의문이다. 흔히 장애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드라마가 눈물에 호소하기 일쑤인데, 이 작품은 강요하는 듯한 감동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덕분에 차분하면서도 침착한 이야기 진행은 오히려 극적인 장면을 나열해 눈물을 짜내는 것보다 더 호소력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눈물샘을 자극하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심심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장르영화의 도식을 피하기 위해..

피와 뼈

재일교포 감독인 최양일이 만든 '피와 뼈'(血と骨, 2004년)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제11회 야마모토 주고로 문학상을 수상한 양석일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로 건너가 파란만장한 삶을 산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北野武)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꿈을 안고 도일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더없이 폭력적이고 위악적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이자 아버지이기 이전에 동물적인 본능을 내세운 남자이며 광기에 휩싸인 괴물로 기억된다. 최 감독은 일본 무사들의 동성애를 다룬 '고하토'에서 함께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를 주연으로 기용해 세상을 험하게 산 사내와 가족의 이야기를 선 굵은 그림으로 보여준..

007 네버다이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 감독이 만든 007 시리즈 18번째 작품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 1997년)는 전 세계를 장악하려는 언론 재벌의 음모를 다룬 특이한 영화다. 신문, 방송, 잡지 등 온갖 미디어를 갖고 있는 언론 황제 카버(조나단 프라이스 Jonathan Pryce)는 온갖 특수무기를 동원해 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기사화하는 악당이다. 나중에 중국과 미국의 세계 대전을 일으켜 이를 기사화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를 막기 위해 007(피어스 브로스넌 Pierce Brosnan)이 출동하는 내용이다. 전작에 비해 스턴트 액션과 특수 무기 등 볼거리가 대폭 늘었다. 특히 BMW에서 협찬한 본드 카는 미사일, 철침, 쇠줄 커터 등 온갖 특수 무기를 ..

친구 (UE)

어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는 프랑스 영화 '빗속의 방문객'이고 하나는 바로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년)다. 안타깝게도 '빗속의 방문객'은 프랑스에서도 아직 DVD가 출시되지 않아서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DVD로 갖고 있기에 비가 간혹 본다. '친구'와 관련해 두 가지 기억이 있다. 모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고, 그것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한 사람은 영화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고, 또 한 사람은 배우 유오성이다. 2003년 여름, 서울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황기석 촬영감독을 만났다. 당시 그가 작업실로 쓰던 오피스텔에 '친구'의 조감독이었던 안권태 감독이 와서 입봉작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