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체 글 2635

한여름의 판타지아(블루레이)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년)는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크게 2부로 구분된다. 1부는 영화 제작을 위해 일본 나라현의 고조시를 찾은 감독 태훈(임형국)이 이야깃거리를 얻기 위해 현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태훈은 조감독이자 통역을 해줄 혜정(김새벽)과 함께 고조시 관광담당 공무원인 유스케(이와세 료)의 안내로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태훈이 끌린 이야기는 오래전 오사카에서 일할 때 한국 여인을 만나 잠시 연애를 했던 겐지(강수안)의 이야기와 배우를 꿈꿨던 유스케가 어떤 여인을 만났으나 정작 이뤄지지 않았던 사랑 이야기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태훈이 모티프를 얻는 것으로 1부는 마무리된다. 2부에서는 내용이 완전히 바뀌어 고조시를 홀로 찾은 여성 혜정(김새..

소라닌(블루레이)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소라닌'(ソラニン, 2010년)은 크게 기대할 것 없는 진부한 청춘 멜로물이다. 아사노 이니오가 일본 만화잡지에 연재한 만화를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밴드를 하는 20대 남녀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동거하며 6년째 열애 중인 메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코라 켄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메이코는 더 이상 원치 않은 직장에 다니는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해 그만두고 타네다도 작곡에 몰두한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에 비해 현실은 냉혹하다. 타네다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을 기약할 수 없는 일상에 지쳐 음악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게 꿈을 접는 타네다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연인의 죽음으..

인터스텔라(4K 블루레이)

요즘 인류를 괴롭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다시 한번 환경파괴를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는 인간이 성장과 경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면서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근처로 옮겨오고,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자연스럽게 가축들을 통해 사람에게까지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경제개발도 좋지만 정도와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생존을 넘어서는 끝없는 이윤추구가 모두에게 득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높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년)도 같은 것을 경고한다. 이 영화는 냉정하게 짚어보면 과학영화이자 우주를 다룬 ..

그레이트 월(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 2016년)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성과 자만심이 가득한 판타지 영화다. 혹독하게 말하면 서양인들을 겨냥한 중국 우월주의를 알리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내용은 신비의 검은 가루를 찾아서 중국으로 흘러든 두 명의 서양 전사가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군 군대와 함께 괴수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타오티에라고 부르는 괴수들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도철(饕餮)이다. 탐할 도(饕)에 탐할 철(餮)이라는 글자처럼 끝없는 욕심의 상징인 이 괴수는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다. 거대한 소의 몸에 호랑이 이빨과 양의 뿔을 지닌 이 괴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파괴의 화신으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는 이 괴수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원래 이민족의 ..

디파이언스(블루레이)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유대인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홀로코스트, 즉 대학살이다.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 동유럽에 산재해있던 수용소에 끌려가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일들이 워낙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대인하면 박해와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제2차 대전 때 저항군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엘스키 빨치산이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지금의 벨라루스 공화국 일대도 점령을 담했다. 나치는 신속하게 해당 지역의 유대인을 골라내 1942년 초까지 수 만여 명을 학살했다. 이때 부모를 잃은 투비아 비엘스키를 비롯한 4형제는 어린 시절을 보낸 벨로베즈스카야 숲으로 달아났다.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