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5/01 9

무숙자(블루레이)

테렌스 힐이 주연한 '튜니티' 시리즈는 국민학교 시절인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한 서부극이었다. '내 이름은 튜니티' '튜니티라 불러다오' '아직도 내 이름은 튜니티' 등 그가 버드 스펜서와 형제로 등장하는 튜니티 시리즈는 당시 여타의 서부극과 다른 배꼽을 빼놓을 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코믹 서부극이었다. 그래서 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에도 설, 추석 연휴때마다 TV에서 시리즈를 자주 틀어주곤 했다. '무숙자'(My Name Is Nobody, 1973년)도 마찬가지. 헨리 폰다와 함께 테렌스 힐이 주연한 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원안을 만들고 토니노 발레리가 감독을 맡았다. 악당들에게 쫓기는 전설적인 총잡이 잭(헨리 폰다)과 그를 추앙하는 젊은 떠돌이 노바디(테렌스 힐)가 귀신같은 총솜씨로 ..

첩혈쌍웅(블루레이)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The Killer, 1989년)은 소위 오우삼 스타일의 집대성이자 최종 완성본이다. 이 작품에는 흰 비둘기, 쌍권총, 휘날리는 긴 코트자락, 슬로모션으로 재현되는 느린 액션, 성당 등 그의 상징처럼 쓰이는 각종 아이콘들이 모두 등장한다. 이런 아이콘들이 현란한 총격전과 어우러져 나름대로 스타일리시한 액션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홍콩 느와르는 정점에 선 이 작품 이후 쇠퇴기로 접어든다. 남자들의 우정과 복수라는 천편일률적인 주제에 기대다보니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액션 밖에 없는데, '첩혈쌍웅'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다 드러냈기 때문.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홍콩 느와르의 영광과 쇠락을 함께하는 아이러니컬한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1980년대에 대한..

라르고 윈치

'라르고 윈치'는 대학에서 정치경제를 전공한 장 반 암므의 원작 소설에 필립 프랑크가 그림을 더해 1989년 펴낸 프랑스의 그래픽노블이다. 출간 이래 20년간 16권의 시리즈가 출간돼 유럽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제로미 살레 감독의 '라르고 윈치'(The Heir Apparent: Largo Winch, 2008년)는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다. 내용은 하루 아침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의 후계자가 된 청년이 기업을 장악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우는 이야기다. 제작진의 의도는 주인공인 라르고 윈치를 007 제임스 본드처럼 키워 적당한 액션과 모험, 여자가 곁들인 시리즈를 만드는게 목표다. 하지만 영화는 감히 007 시리즈에 견주기 힘들 만큼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액션에 ..

위 워 솔저스(블루레이)

랜들 월리스 감독의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 2002년)는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다. 프랑스가 오랜 식민통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베트남군에 밀려 철수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미군이다. 미군은 그 뒤로 1975년 종전 때까지 10년의 세월을 월남전에 묶이게 된다. 그 시작이 베트남의 이아드랑 계곡 전투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미 제 7기병연대 1대대장이었던 할 무어 중령이 약 400명의 부하들과 함께 72시간 동안 2,000명의 북베트남 군대와 맞서 싸운 이야기다. 미군은 이 작전에서 처음으로 헬기를 이용해 병력을 전장에 투입하는 공수 작전을 시험한다. 사전 정보나 별다른 지식없이 베트남에 투입된 미군은 전략적 이점과 오랜 기간 프랑스와 싸우며 전술을 갈고 닦..

악어

1996년,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독특한 표지에 끌려 집어든 비디오 테이프 '악어'(1996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 특이한 영상과 캐릭터를 보여준 그 작품은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선 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가 시선을 끈 것은 머구리라는 독특한 소재였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뜻하는 옛말이다.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라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난파선 인양이나 시신을 건져내는 궂은 일을 한다. 김 감독이 '악어'에서 그린 머구리는 그 중에서도 시체 인양을 전문으로 한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의 시신을 뒤져 금품을 가로채거나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건져 올린다. 그야말로 험하디 험한 삶을 사는 주인공 앞에 한 여인이 투신하며 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