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비추천 DVD / 블루레이 430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블루레이): 끔찍한 젊은날의 기억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과장되는 등 왜곡되기 마련이다. 특히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면 온전한 기억을 간직하기란 쉽지 않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2017년)는 왜곡된 젊은 날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어느 노인이 젊어서 좋아했던 여인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노인은 가치관 등 여러가지가 여인과 맞지 않아 헤어졌고, 그 여인이 친구와 사귀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바트라 감독은 노인이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마치 미스터리 소설처럼 수수께끼를 풀 듯 헤쳐 나간다. 아름답고 빛났던 청춘의 한때라고 여겼던 기억의 이면에는 돌이킬 ..

위도우즈(4K 블루레이)

스티브 맥퀸 감독의 '위도우즈'(Widows, 2018년)는 제목처럼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과부가 된 여인들이 살기 위해 범죄와 복수를 동시에 벌이는 영화다. 원래 영국에서 방영된 TV 시리즈를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 어린 시절 이 시리즈를 본 스티브 맥퀸 감독이 깊은 인상을 받아 영화로 다시 만든 것. 영화의 묘미는 범죄와 복수 사이에 숨어 있는 반전의 비밀. 특히 여타 범죄 영화와 달리 총질과 액션에 닳고 닳은 여인들이 아닌 생전 처음 한탕에 나선 서툰 여인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만큼 준비 과정이나 진행이 서툴러서 조마조마한 긴장을 유발한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범죄 조직과 벌이는 액션은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한다. 그동안 '노예 12년'이나 '셰임' 등 드라마에 일가견을 보인 스티브 맥퀸..

배트맨 앤 로빈(4K 블루레이)

3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앤 로빈'(Batman & Robin, 1997년)은 경박하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생일파티처럼 시끄럽고 요란할 뿐 더 이상 고뇌하는 영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는 슈마허 감독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했다. 이유는 아이들이 기존 배트맨 시리즈를 보면서 무서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슈마허 감독 역시 여기에 충실해 재미있게만 만들려고 하다보니 온통 장난감같은 특수무기와 알록달록한 세트, 배우들의 의상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덕분에 근 10년 가까이 배트맨 시리즈의 후속작이 나올 수 없게 됐다. 반면 오랜만에 등장한 '배트맨 비긴즈'를 돋보이게 만든 효과도 있다. 처음부터 거두절..

프리즌 (블루레이)

나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프리즌'(2016년)은 살인, 마약 밀수 등 각종 범죄의 진원지가 알고 보니 교도소였다는 깜찍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한석규)가 재소자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를 조종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범이 사회가 아닌 교도소에 갇혀 있다 보니 수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죄수는 오히려 교도소를 아지트삼아 바깥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낸다. 어찌 보면 법의 보호를 받는 셈이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완 경찰(김래원)이 죄수의 신분으로 위장 잠입해 범죄의 전모를 캐는 내용이다. 간혹 외신에서 중남미 마약왕들이 감옥에서 호화롭게 편안하게 지내며 각종 범죄를 교사한다는 뉴스를 더러 봤다. 하지만 치안 부재의 중남이에서나..

강호정(블루레이)

1980, 90년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홍콩 누아르는 감독에 따라 작품이 천차만별로 갈린다. 서극이나 오우삼 같은 감독들은 자기 개성을 살리며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왕가위 감독은 결이 다른 홍콩의 우수 어린 정서를 반영했다. 나머지 감독들 중에는 서극이나 오우삼의 영향을 받아 흥행을 노리고 흉내를 낸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흉내를 잘 내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아주 보기에 곤혹스러운 작품이 돼버린다. 1980년대 '영웅본색'이후 숱하게 쏟아져 나온 온갖 영웅 시리즈들이 대부분 그런 작품들이다. 당시 이런 작품들의 제목에 속아 비디오 가게에서 돈과 시간을 날린 씁쓸한 기억이 있다. 황태래 감독의 '강호정'(江湖精: Rich And Famous, 1987년)도 그런 허접한 작품 중 하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