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280

와일드 번치(SE)

폭력 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샘 페킨파(Sam Peckinpah) 감독의 위대한 걸작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년)가 골든레이블 DVD로 새롭게 나왔다. 기존판과 달리 영상을 애너모픽 처리했으며 음성해설은 물론이고 2장의 디스크에 걸쳐 수록한 부록에 모두 한글 자막을 집어넣었다. 이 영화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다. 서부 시대 마지막 무법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작품은 사실적인 폭력 묘사를 통해 폭력이 주는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막판 주인공들이 멕시코 반란군과 벌이는 총격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슬로 모션 처리를 통해 한 편의 군무를 보는 것처럼 처절하면서도 황홀한 그림을 보여준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

클로저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야. 거부할 수도 있어." 영화 '클로저'(Closer, 2004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우연히 만난 네 남녀의 얽히고 설킨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인간 관계의 오묘함을 절묘하게 나타낸 뛰어난 작품이다. 네 남녀의 독특한 관계, 감칠맛 나는 대사들은 어설픈 로맨틱 코미디와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마치 집중력 높은 연극처럼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이 작품은 아닌게 아니라 영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패트릭 마버 원작의 연극을 필름으로 옮긴 작품이다. 메가폰은 '졸업'으로 유명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잡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익장답게 제대로 만든 정극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스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미언 라이스의 'The Blo..

분노의 주먹 (SE)

오래도록 영화팬들을 기다리게 만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걸작 '성난 황소'가 드디어 DVD로 나왔다. 국내 개봉 제목인 '분노의 주먹'(Raging Bull, 1980년)으로 출시된 이 작품은 1940년대에서 50년대를 주름잡으며 세계 미들급 챔피언을 지낸 실제 권투 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전성기와 몰락을 그렸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빼어난 영상이 압권이다. 마치 링에 서있는 권투선수의 눈처럼 움직이는 카메라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극적 효과, 음향 과 어우러져 더할 수 없이 비장하고 치열한 경기장면을 만들어냈다. 특히 흑백으로 찍은 영상은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처절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여기에 고무줄처럼 몸무게를 늘였다 줄이며 열정을 쏟아부은 로버트 드니로 등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작가는 영혼의 상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을 품어야 애절한 목소리가 나오는 '서편제'처럼 두고두고 파먹을 상처가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 감독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 1995년)는 작가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존 오브라이언의 반 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알코올 중독자(니컬라스 케이지 Nicolas Cage)와 매춘부(엘리자베스 슈 Elisabeth Shue)의 아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한 인간의 절망과 허무를 한 편의 시처럼 훌륭한 영상으로 표현했다. 때로는 흔들리며, 때로는 포커스 아웃되는 영상은 마치 보는 이가 술에 찌든 주인공인 것처럼 감정에 젖어들..

오로라 공주

영화배우 방은진이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오로라 공주'(2005년)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재미있게 본 수작 영화다. 기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엄정화가 주연했기 때문.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두 편을 제외하고 출연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가 판에 박은 듯 똑같고 그저 그랬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편을 제외하고 그의 역할이 비중 있게 드러난 작품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선입견을 깰 만큼 엄정화의 변신이 훌륭했다. 아울러 작품 자체도 아동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범인에 대한 엄마의 증오와 복수심을 아주 극적으로 잘 전달했다. 그만큼 대본의 구성이 탄탄했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감독의 연출 솜씨도 대단했다. 데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영화판에 오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