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 2016년)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성과 자만심이 가득한 판타지 영화다.
혹독하게 말하면 서양인들을 겨냥한 중국 우월주의를 알리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내용은 신비의 검은 가루를 찾아서 중국으로 흘러든 두 명의 서양 전사가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군 군대와 함께 괴수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타오티에라고 부르는 괴수들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도철(饕餮)이다.
탐할 도(饕)에 탐할 철(餮)이라는 글자처럼 끝없는 욕심의 상징인 이 괴수는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다.
거대한 소의 몸에 호랑이 이빨과 양의 뿔을 지닌 이 괴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파괴의 화신으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는 이 괴수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원래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은 괴수들을 막는 방벽이 됐다.
그런데 영화 속 만리장성은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이 아니다.
성벽 안에 터빈 엔진을 연상케 하는 기계 장치가 들어 있어 각종 무기들을 작동시킨다.
예를 들어 벽에서 거대한 가위가 튀어나와 성벽을 오르는 괴수를 자르고 커다란 불덩어리를 날리며 쇠뇌를 연상케 하는 대형 화살을 쏘아댄다.
언뜻 보면 '반지의 제왕'의 헬름 협곡 전투를 연상케 한다.
끝없이 몰려드는 타오티에 무리는 사루만의 어둠의 군대를 연상케 하고, 거대한 투석기와 가위 및 쇠뇌 등은 헬름 협곡 성벽의 투석기를 닮았다.
등장인물과 장소만 동양인과 중국일 뿐 싸움 장면은 반지의 제왕을 흉내 냈다.
여기에 중국 문화의 우월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맷 데이먼과 페드로 파스칼이 연기한 윌리엄과 페로라는 두 서양 전사가 노린 신비의 검은 가루는 바로 중국이 발명한 화약이다.
여기에 괴수조차도 넘지 못하는 거대한 만리장성과 곡예를 보는 듯한 신기에 가까운 중국의 공격술,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풍선 부대 등 만화 같은 설정으로 서양 사람들의 얼을 빼놓으려고 달려든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황당하고 설정도 판타지를 뛰어넘는 얼토당토않은 것들이라 중국 문화의 우월성보다는 유치함을 더 느끼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장이머우 감독이 이런 황당한 작품의 연출을 맡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영웅'을 내놓았을 때부터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중심의 국수주의적 영화를 만든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문화적 자부심을 강조한 영화와 입맛대로 역사를 요리하며 체제 옹호적 내용을 담은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후자를 우리는 프로파간다, 즉 선전물로 분류한다.
선전물이라도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처럼 압도적인 영상미와 구성을 보여주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도 못하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를 한 영상은 마치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정신없는 네온 간판 같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사인 레전더리 픽처스와 중국 업체 LeEco가 합작으로 만든 이 작품은 무려 1,8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을 만든 웨타와 '스타워즈'의 ILM 등 할리우드의 최정상급 디지털 회사가 동원됐고 맷 데이먼, 페드로 파스칼, 윌렘 대포, 유덕화, 경첨 등 할리우드와 중국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런 물량과 배우들을 갖고 뽑아낸 결과치고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중국인들의 평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장이머우 감독은 예전 같지 않다.
'국두'나 '붉은 수수밭'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과 현실을 비판적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던 과거의 그가 그립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장면은 디테일이 뭉개지지만 전체적으로 윤곽선이 또렷하고 색감이 잘 살아있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도가 우수해 서라운드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다.
저음의 울림도 좋은 편.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공성전 촬영, 무기 설명, 만리장성 세트, 액션, 삭제 장면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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