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인생이라 부르는 오색 베일을 들추지 마라.(Lift not the painted veil which those who live call life)
퍼시 셀리의 시 '오색 베일을 들추지 마라'(Lift not the painted veil)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오색으로 빛나는 베일 너머에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걷어보지만 막상 그 뒤에 있는 것이 꼭 희망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이 시와 젊어서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읽은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에 나오는 피아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구상한다.
남편은 아내 피아가 죽기를 바라며 말라리아가 무섭게 퍼지는 성에 가둔다.
그곳에서 피아는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 간다.
모옴은 1925년 중국을 다녀온 뒤 피아 이야기에 여행의 경험을 덧붙어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을 썼다.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남편이 콜레라가 창궐하는 시골 마을로 아내를 마치 벌주듯 데려가는 이야기다.
아내는 한순간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해 남편을 거부하고 막상 정부였던 남자에게 달려가지만 환영받지 못한다.
결국 아내는 선택의 여지없이 세균학자인 남편을 따라 전염병이 도는 마을로 따라간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아내가 들춘 화사한 베일 뒤에는 진정한 사랑이나 희망보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어두운 절망과 우울, 심장을 옥죄는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존 커랜 감독의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2006년)은 국내에도 '인생의 베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모옴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전체적인 내용은 소설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결말이 다르다.
소설에서 남편은 죽는 순간까지 아내를 용서하지 않는다.
아내는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남편과 아내는 전염병 마을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아내가 아닌 남편이다.
모옴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비정하고 차가운 마음을 이야기했다면 영화는 그래도 베일 너머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말뿐만 아니라 소설은 철저하게 아내의 관점에서 심리 묘사에 치중한 반면 영화는 두 사람의 관점을 오가며 스토리 텔링에 초점을 맞췄다.
그만큼 영화는 두 사람의 심정 변화를 소설만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다.
다만 소설보다 나은 게 있다면 수려한 중국의 산세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 너머로 굽이치는 산봉우리가 늘어선 장면이나 물 위로 산세를 드리운 풍경은 영락없이 동양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수려한 풍경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한계다.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이 각각 아내 키티와 남편 월터를 맡아 열심히 연기했다.
특히 나오미 왓츠는 고통스러운 임신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심정적으로 공감 가는 연기를 훌륭하게 잘했다.
다만 남편 월터의 행동을 이해하기에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하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력보다 연출의 문제다.
소설과 다른 영화적 결말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더 어울리겠지만 모옴이 다루고자 했던 인간의 오판이 빚은 잘못된 인생이라는 주제의식과 거리다 멀다.
그 바람에 영화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인생을 바꾼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그저 한 순간의 스캔들처럼 맥없이 끝나고 만다.
차라리 결말을 바꾸지 말고 소설의 결말을 따라 두 사람의 내면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아련하게 보이는 중국의 산수와 푸른빛, 노란빛이 감도는 들판의 풍경을 명확한 색감으로 잘 살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랑랑이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 소리가 청취 공간을 부드럽게 감싼다.
부록으로 배우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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