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로테 라이니거 감독의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The Adventures Of Prince Achmed)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다.
다양한 색감의 배경을 바탕으로 마치 종이를 오려낸 듯한 캐릭터들이 움직인다.
캐릭터들의 문양이나 장식 등이 어찌나 섬세한 지 오랜 세월 쪼아낸 조각같다.
그런데 이토록 섬세한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신기하다.
물론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한 요즘은 일도 아니지만 이 작품의 제작 연도는 자그마치 90년전인 1926년이다.
영화를 만든 여류 감독 로테 라이니거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개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란 그림자 놀이와 흡사하다.
등불에 비친 손 모양이 만드는 그림자로 각종 동물을 만드는 놀이처럼 종이를 오려 만든 캐릭터나 소품에 빛을 비춰 생긴 그림자를 촬영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그림자가 마치 만화영화처럼 움직이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동작 하나 하나를 일일이 다시 오려서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라이니거 감독은 캐릭터의 각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을 일일이 나눠 50개 가까운 조각으로 만든 뒤 이를 연결해 실제 관절 움직임처럼 만들었다.
이를 컷아웃 기법이라고 한다.
덕분에 이 작품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종이 인형 같지 않고 애니메이션처럼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인간 승리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아라비안 나이트와 유럽, 중동 지역 설화를 섞어서 만들었다.
마법사의 농간에 빠진 왕자가 요정을 만나 사랑에 빠진 뒤 마법사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여기에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등장하고 못된 마법사와 이를 응징하려는 또다른 마법사, 백조의 호수 이야기나 나뭇꾼과 선녀를 연상케 하는 요정의 등장 등 다양한 설화들이 끼어 들었다.
대사는 많지 않은데 모두 인서트 컷 자막으로 등장한다.
그만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의 영상은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화질이 당연히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제 2 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통에 원본 필름이 소실돼 극장 상영용 프린트를 토대로 만든 만큼 필름 손상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세로 줄무늬는 물론이고 각종 잡티와 플리커링이 보이고 화면 밝기도 일정하지 않으며 자주 변한다.
그래도 실사 영화가 아니어서 보는 데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니베아 크림 광고에 사용된 단편 실루엣 애니메이션이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마치 클래식 같은 음악은 볼프강 젤러가 맡았다.
로테 라이니거는 189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중국의 그림자연극을 좋아해 스스로 이를 만들어 친구들과 즐겼다고 한다.
중국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배경. 라이니거 감독은 15세때 독일 감독 파울 베게네의 강연에 매료돼 영화를 배우게 됐으며, 베게네가 애니메이션 연구팀에 소개하면서 이 분야에 발을 디뎠다.
중국 황제와 황궁 묘사 등은 라이니거 감독이 어려서 좋아한 중국 그림자연극의 영향으로 보인다.
라이니거는 1921년 프로듀서이자 촬영기사였던 카를 코흐와 결혼했고 1923년부터 3년 동안 남편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길게 늘어진 베일이나 다탁 문양 등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됐다. 독일 애니메이션의 거장 발터 루트만도 이 작품에 참여했다. 라이니거 감독은 뛰어난 손놀림으로 캐릭터를 제작했고 루트만은 은은한 배경을 만들었다.
알라딘의 마술램프와 램프의 요정 지니. 라이니거 감독은 캐릭터의 손동작을 꼼꼼하게 표현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에서 손이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봤기 때문이다.
라이니거 감독은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영국으로 건너가 BBC TV에서 어린이 대상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후 라이니거 감독은 캐나다에서 그림자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독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가 1981년 82세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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