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광기의 시네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아닌게 아니라 '성스러운 피'를 시작으로 '엘 토포' '홀리 마운틴' '판도와 리스' 등 국내 상영된 그의 영화들을 보면 충격적이며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 가운데 애잔한 선율과 더불어 발견할 수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은 조도로프스키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함이다.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5년)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의 경우 판권 분쟁 등 여러가지 사정상 뒤늦게 개봉했지만 무려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을 만큼 그의 영화는 요즘봐도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아울러 요즘 세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그의 작품은 다면적이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예수를 닮은 남자가 태양계의 행성을 상징하는 7명의 대표자들과 함께 성스러운 산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구도의 과정은 정치가, 종교인, 군인, 기업가 등을 비꼬는 풍자로 가득하다.
물론 조도로프스키 답게 그 풍자는 유머러스하면서 살벌하다.
'성스러운 피'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아울러 예술의 다양성과 힘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다.
판권 분쟁이 잘 해결돼 뒤늦게 나마 볼 수 있게 돼 다행이다.
개인적으로는 조도로프스키 감독을 너무 좋아해 '홀리 마운틴'이 국내 개봉하기 이전인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조도로프스키 감독 박스세트' 한정판 DVD를 구입했다.
일본에서 나온 한정판 박스세트는 '판도와 리스' '엘 토포' '홀리 마운틴' '성스러운 피' 등 그의 대표작 4편, 조도로프스키 인터뷰 등 5장의 타이틀로 구성돼 있다.
케이스도 예쁘고 감독의 친필 사인, 그가 만든 타로 카드 1벌까지 들어 있는 훌륭한 세트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글 자막이 없어 늘 그림만 봤다.
물론 '홀리 마운틴'의 경우 대사가 있는 장면이 많지 않아 상관없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국내에 정식으로 DVD가 나와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일본판 박스세트와 최근 국내에 정식 발매된 한글판 DVD를 비교하면 화질은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한글판이 더 낫다.
2.35 대 1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좋은 편이다.
음향도 한글판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한다.
특히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직접 작곡한 음악이 리어에서 흘러 나와 은은한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한글판이 아쉬운 것은 부록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판의 경우 12분 가량의 감독 인터뷰와 프로덕션 노트 등이 들어 있다.
박스세트 안에는 이렇게 5장의 DVD타이틀과 감독의 친필 사인 한정판 인증서, 감독이 만든 타로카드 1벌이 들어 있다. 디지팩 타이틀은 작품이 나온 순서대로 표지에 원이 1~4개 뚫려 있다.
아, '산타 상그레'.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작품 덕분에 조도로프스키를 알게 됐다. 국내에는 '성스러운 피'로 번역돼 개봉했다. '라디오스타'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 94년 국내 수입해 개봉했으나, 검열로 무려 30분 가량 잘려나갔다. 물론 박스세트에 들어있는 DVD는 무삭제로 온전히 볼 수 있으나 헤어누드가 금지된 일본 사정상 보기 싫은 모자이크 처리가 자주 등장한다.
'홀리 마운틴' 일본판과 국내판 타이틀. 타이틀 디자인은 일본판이 더 예쁘게 나왔다.
<파워DVD로 순간 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이 작품의 감독, 각본, 의상, 세트디자인, 미술, 음악 뿐만 아니라 주연까지 맡았다.
군대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상징하는 장면. 조도로프스키 감독 작품이 늘 그렇듯 역설적이게도 잔인하고 충격적인 장면에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와 대조적인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극중 삽입된 도마뱀과 두꺼비를 동원한 연극은 제국주의의 제 3세계 침략을 상징한다.
조도로프스키의 작품에는 종교적 구원과 신성 모독의 메시지가 공존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성서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지상의 모든 제도화된 종교는 사악하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 많은 예수상에서 종교의 자기복제와 상품성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을 조롱한 이 장면 또한 신성모독의 느낌이 강하다.
연금술사로 등장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1930년 2월7일 생으로 올해 79세인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전위 연극을 했던 페르난도 아라발, 작가이자 '판타스틱 플래닛'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롤랑 토포르와 함께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파닉 무브망을 주창한다.
이 작품에는 부감 샷이 많이 나온다. 그의 부감샷은 기하학적이며 미술적인 영상을 가장 잘 드러낸다.
똥으로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 장면은 좀 더럽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와 황금 만능주의를 직접적이고 극단적으로 조롱한 장면이다.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금이라는 배설물로 본 이 장면은 압권이다.
타로카드를 직접 도안하기도 한 조도로프스키의 미술적 감각이 빛나는 영상.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성기 노출은 물론이고 헤어누드,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 불구자들을 거리낌없이 등장시킨다. 그는 "모든 신체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장애도 개성적인 미로 본다. 일본판 DVD의 경우 이런 장면들은 성기 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그는 판권 분쟁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강도 등 범죄자들과 영화를 만드는 기행을 벌인다. 심지어 자신이 위조 지폐를 찍어서 영화를 만든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오르가슴을 기계를 이용해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이 장면도 압권이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기발함을 엿볼 수 있다.
토성의 수호신이자 전쟁 완구를 만들어 파는 기업가로 나온 여인이 바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부인인 발레리 조도로프스키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폭력적인 제국주의 특성과 사람들을 우민화하는 잘못된 제도 교육의 병폐를 꼬집었다.
이 영화는 '엘 토포'를 보고 조도로프스키에 열광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그의 모든 판권을 사들이면서 제작비를 전액 지원했다.
재미있는 것은 150만달러의 제작비 가운데 절반만 썼다는 점이다.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배우 중 한 명이 제작비 절반을 들고 도망갔기 때문. 돈을 훔쳐간 인물은 이 작품에소 독재자 역을 맡은 배우로, '엘 토포'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그는 절도 전과가 있는 실제 도둑이었다.
이 작품 이후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1975년에 프랭크 허버트의 SF소설인 '듄'의 영화화를 맡았다.
'듄'은 아들 브론티스가 주인공 폴을 맡고 오손 웰스, 화가 살바도르 달리,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알랑 들롱, 제랄딘 채플린 등이 출연하며 핑크 플로이드, HR기거 등이 참여하는 초특급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듄'은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제작을 거부하며 무산됐다. 이때 만든 비주얼 이미지와 미술 세트들은 몇 년 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HR기거와 함께 '에일리언'에서 그대로 써먹었다.
조도로프스키는 '듄'이 무산된 뒤 기획했던 아이디어를 장 지로와 함께 그래픽 노블 '잉칼-존 디풀의 모험'으로 만들어 80년에 출간했다. 이 작품은 뤽 베송이 '제 5원소'를 만들며 그대로 표절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영화에 직접 출연한 이유는 그가 결성한 파닉 무브망 원칙 가운데 '자신이 연출한 영화나 연극에 직접 출연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
현실이 곧 영화요, 영화가 현실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엔딩.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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