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DVD 1458

인사이드 아웃(블루레이)

피트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년)은 한마디로 아이디어의 승리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잡아 적절한 스토리와 함께 탁월하게 시각화했다. 내용은 릴리라는 소녀가 자라면서 겪게 되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기쁨, 슬픔, 분노, 소심, 새침 등 5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디자인해 이들의 상호작용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각각의 감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고유 특성으로 개성 있게 묘사됐다. 기쁨은 반짝이는 별, 분노는 불붙은 붉은 벽돌, 슬픔은 푸른색 눈물방울처럼 모양만 봐도 성격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감정의 상호작용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만든 점이다. 다섯 가지 감정들은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쓰..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기훈 감독의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는 기자를 꿈꾸던 주인공 도라희(박보영)가 스포츠신문의 수습기자로 입사해 겪는 애환을 그린 코미디다. 이혜린 작가의 원작 소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데 작심하고 만든 코미디여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2005년 스포츠신문의 연예부 기자가 된 뒤 경제신문, 온라인 매체 등을 거친 작가가 기자 시절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데, 영화는 이를 더 과장한 듯싶다. 우선 원작 소설의 주인공 이름인 이라희를 의도적으로 '또라이'를 연상케 하는 도라희로 바꿔 캐릭터를 희화화한 점부터 그렇다. 배경이 되는 영화 속 신문사 또한 저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하다. 주인공의 상관인 연예부 부장(정재영)은 시대에 뒤처진 행태를 고..

줄리에타 (블루레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Julieta, 2016년)는 독특한 영화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만남과 이별을 강조하듯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함께 이야기한다. 영화는 줄리에타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우연히 기차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여인은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바닷가 마을에 사는 남자를 찾아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지면서 여인은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한다. 여인은 사랑했던 존재들이 곁을 떠나자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들의 빈자리를 보며 새삼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이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퇴화한 생물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활을 놓아버렸던 여인은 어느 ..

꽁치의 맛(블루레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들은 편안해서 좋다.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네 소소한 일상 속 흔한 얘기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새삼 거장의 무게를 느낀다.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년)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만춘' '가을 햇살' 등 그의 전작들에서 되풀이된 홀로 된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한 황혼을 맞는 이야기다. 류 치슈, 오카다 마리코, 미카미 신니치로, 나카무라 노부오 등 출연진도 '가을 햇살'과 상당 부분 겹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을 햇살'이 혼자 남은 나이 든 중년 여성이 과년한 딸 걱정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혼자 남은 중년 남성의 외동딸 걱정을 다뤘다. 근저에는 아버지가 됐든, 어머니가 됐든, 딸이 됐든 모두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

조용한 가족(블루레이)

영화 '조용한 가족'(1998년)은 잔혹코믹극을 표방한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잔혹코믹극이란 무섭고 끔찍한 내용이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이 가져오는 부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를 움켜잡아 한 숨 돌렸는데 우지직 하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킬러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는 식이다. 그만큼 김 감독은 상충되는 웃음과 공포의 순간을 병치하는 영리한 구성으로 반전을 꾀하며 기발한 재미를 줬다. 어찌보면 이는 곧 예상하지 못했던 트릭이기도 하지만 기분좋게 웃을 수 있는 장난같은 속임수다. 이런 트릭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꿰어맞춘 이야기의 연결성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