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DVD 1458

베일을 쓴 소녀(블루레이)

기욤 니클루 감독의 '베일을 쓴 소녀'(La religieuse, 2013년)를 보면 가장 먼저 영상이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투명한 수채화처럼 깨끗한 색감과 손에 잡힐 듯한 뽀얀 빛, 균형이 잘 잡힌 가운데 적절하게 공간을 채우는 인물과 소품들은 잘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폐쇄적이며 은밀하기까지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수녀들 만의 내밀한 이야기는 충분히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돋울 만 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드니 디드로가 쓴 원작 소설 '수녀'는 오랜 세월 금서였다. 물론 거기에는 수도원에서 금기시된 수녀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18세기 시대 정신에 어긋난다는 판단과 더불어 종교에 대한 반감, 나아가서는 신권에 대한 도전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깔려 있다. 그런데 비단 이런 문제..

노인들

흔히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발견했다. 퇴행성 뇌질환인 이 병은 서서히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기억을 잘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판단력이 떨어져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보통 65세 이후에 발병하는데 더러 40대 미만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젊은 여성 이야기를 다뤘다. 젊은 나이에 걸리면 병의 진행속도가 빠르다. 발병 원인은 간단하게 말해 뇌 기능을 저하시키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그렇다는데, 유전적 요인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가족 중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발병 확률이 높다. 문제는 아직까지 치료방법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블루레이)

일본 저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매년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는 산장을 신슈에 갖고 있다. 그는 그 곳에 친구 내외와 딸을 자주 초대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10세 남짓한 친구의 딸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또래 소녀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바로 장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단순히 영감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주인공 치히로의 모습도 친구 딸과 똑같이 그렸다. 나중에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친구 부부는 딸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화 개봉 뒤 많은 사람들은 작품 해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미하엘 하네케 감독 말마따나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일 뿐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평론가..

로저 워터스 더 월(블루레이)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핵심이었던 로저 워터스는 2002년 서울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졌다. 맨 앞줄에서 본 그의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음반으로만 듣고 비디오테이프나 DVD로만 본 그가 온갖 영상과 악기를 동원해 쏟아내는 소리의 마술에 취해 3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기억이 있다. 관객들도 대부분 그의 골수팬인지라 연신 "로저"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 시절에도 그랬지만 솔로로 나오고 나서도 공연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공연을 위해 영상을 따로 찍고 거대한 세트를 만들어 한 편의 록 드라마처럼 연출한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연출한 '더 월' 라이브는 압권이었다. 유명한 가수들이 객원 싱어로 등장해 오페라처럼 연출한 이 작..

허슬러

로버트 로슨 감독의 명작 '허슬러'(The Hustler, 1961년)는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판 '타짜' 같은 영화다. 타짜의 등장인물들이 화투로 대결을 벌인다면 허슬러의 등장인물들이 대결을 위해 선택한 도구는 당구다. 내용은 내기 당구로 유명한 주인공 에디(폴 뉴먼)가 거물 당구꾼 미네소타 팻(잭키 글리슨)을 만나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에디는 몸과 마음에 고통을 받는 일도 겪고 소아마비를 앓은 여인 사라(파이퍼 로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제목 허슬러는 전문적으로 내기 도박을 즐기는 당구꾼으로, 우리네 타짜에 해당한다.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당구 시합을 참으로 긴장감있게 잡아냈는데, 여기에는 로슨 감독의 이력이 한 몫 했다. 로슨 감독은 젊은 시절 당구에 빠져 허슬러..